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0월 27일 - 사회교과서 굴욕(2)

늙은어린왕자 2011. 11. 1. 10:16

10월 27일 목요일 구름 조금
사회교과서 굴욕(2)

 

  사회시간이었다. 어제에 이어 도시가 발달하는 지형에 관해 공부했다. 오늘은 평야나 하천(강) 주변, 해안가에 사람이 많이 사는 까닭을 정리했다.
  평야에는 집이나 도로를 지을 땅이 많고 농사도 쉽게 지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것으로 쉽게 정리가 끝났다. 하천도 농업이나 공업, 생활에 필요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문제는 지도서였다. 지도서에는 하천 주변에 사람이 많이 사는 까닭을 설명하면서 다음 구절을 넣어놓았다.
  ‘강을 통해서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이 편리하다.’
  아이들의 발표를 기다렸지만 이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강을 통해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아이들한테 안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잠시 고민을 하였다.  지도서에 있는 내용은 가르쳐야 하지만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을 함부로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 대개 지도서 내용이 기준이 되므로 안 가르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선생님, 정답지 보세요? 우와! 선생님이 답지 보신다.”
  바로 앞에 앉은 시현이가 고민하는 나를 보고 조롱하듯 말했다. 지도서에 정답이 나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눈치도 빠르지.
  “아냐, 이건 참고자료야. 여기 있는 내용 중에서 소개해줄 만한 게 있나 해서 보는 거야.”
  시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어서 말했다.
  “이것 보세요. 선생님들이 보는 지도서에 보면 ‘강을 통해서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이 편리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때요?”
  아이들도 생각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반응이 쏟아졌다.
  “물자가 강으로 이동해요?”
  “다리를 건너면 되지.”
  “자동차나 기차로 싣고 가잖아요.”
  아이들의 경험 속에서도 사람이나 물자가 강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요즘이 조선시대도 아니잖아요?”
  “맞어. 옛날에는 사람들이 배 타고 강을 건넜으니까. 근데 요새도 배 타고 강 건너는 사람이 있나?”
  책을 많이 보는 아이들은 예리한 분석까지 곁들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할까? 안 쓰더라도 시험에 나오면 사람이나 물자가 이동한다고 해야 됩니다.”
  좀 어정쩡하긴 했지만 이렇게 정리하고 다음 공부로 넘어갔다.
  사회 교과는 교과서나 지도서 모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제목을 ‘사회교과서 굴욕’이라고 했는데 엄격히 말하면 ‘사회지도서 굴욕’이 맞겠다.

 

[덧붙임]

  강을 통해서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이 편리하다는 내용은 아이들 말대로 참 생소하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내용이 4대강 사업을 염두에 두고 넣었을 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