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1월 1일 - 수지 할머니 정호 동생

늙은어린왕자 2011. 11. 12. 10:50

11월 1일 화요일 구름 조금, 포근하다.
수지 할머니 정호 동생

 

  사회 시간에 인구가 이동하는 이유에 관해 알아보는 공부를 할 때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이 이동한 사례를 발표하고 교과서에 기록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사례가 나왔다. (김)현민이는 아빠 직장을 옮겨서 멀리 광주광역시에서 김해시로 이사왔다고 했다. 희지도 같은 까닭으로 부산광역시에서 김해시로 옮겨왔다고 발표했다. 현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주택 문제로 한림면에서 구산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발표할 때마다 교과서에 이름, 전에 살던 곳, 현재 사는 곳, 이사한 이유를 기록했다.
  다음은 수지였다. 수지는 인천에 사시던 할머니가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과 합치려고 김해에 있는 큰아빠 댁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 칸에 ‘수지 할머니’라고 쓰고 나머지 빈 칸에 발표한 내용대로 기록하도록 했다. 이 때 수지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수지 할머니가 뭐예요? 제가 할머니란 말이에요?”
  아이들이 웃었다.
  “수지가 할머니래.”
  “웃긴다. 수지 할머니.”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럼 수지 할머니지 누구 할머니냐?”
  “수지의 할머니죠. 그냥 수지 할머니가 아니죠.”
  미경이가 가르치듯 내게 말했다. 별 것 아닌 일로 꼬투리 삼는 녀석들을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엉뚱하다고 해야 하나.
  더 발표가 없자 내가 사례를 말했다.
  “내 동생이 이번에 부산에 살다가 이번에 김해로 이사와. 부산 집을 팔고 김해에 집을 마련하는 셈이지. 요것도 적어보자.”
  그러자 수민이가 물었다.
  “그럼 이정호 동생이라고 써야 합니까?”
  “그렇지.”
  “알았어요. 이정호 동생이라고 씁니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민이 말에서 노림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노림수가 튀어나왔다.
  “야! 이정호 동생이래. 이제 선생님은 동생이다.”
  “하하하. 정호 동생!”
  개구쟁이들의 장난에 또다시 교실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할머니 소리를 들은 수지가 어떤 느낌을 가졌을 지 짐작이 됐다.
  “으흠, 정호 동생 밥 먹으러 갑시다.”
  어느 새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얼른 공부를 마무리 지었다. 수지는 많은 손자, 손녀들과, 나는 많은 형, 누나들과 함께 밥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