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수요일 구름. 포근하다.
선생님 평가
첫째 시간에 아이들을 컴퓨터실로 데려갔다.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 만족도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원래 이 평가는 각자 집에서 하는 것이지만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인터넷이 제대로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에서 함께 하게 됐다.
평소에는 내가 아이들을 평가하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아이들한테 평가받는다니까 솔직히 불안감이 앞섰다.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평가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내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겉보기에 아이들은 평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빨리 평가를 마치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나 가졌으면 하는 눈치였다. 불안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한 아이가 물었다.
“이거 잘못되면 선생님 잘려요?”
아주 범죄자가 아니면 이런 평가로 교사를 그만두게 할 일은 없겠지만 질문을 들으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응, 잘릴 수도 있다.”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더니 몇몇 여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흐흐 선생님, 우리한테 잘 보이세요.”
“우리가 선생님을 보낼 수도 있어요. 흐흐.”
개구쟁이 남학생들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쳤다.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큰 화면으로 평가누리집을 안내하고 참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렀다.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 평가하세요. 아닌데도 맞는다고 하거나 맞는데 아니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곧 평가에 들어갔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는 옛 말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덧붙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들도 선생님들을 평가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늘 선생님을 만나니까 평가하기 쉽지만 부모님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요.
담임선생님은 그나마 평가하기가 조금 낫습니다. 가끔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정보가 거의 없는 전담선생님들이나 교장, 교감선생님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나도 집에 가면 부모로서 아이들 학교 선생님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 점이 걱정입니다.
담당선생님 말로는 학교에서 평가할 때 담임이나 해당 교과목 교사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평가에 영향을 줄 만한 행동은 안 했으니 걱정말고, 다음부터는 담당선생님 말대로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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