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글쓰기교실 (1)
지난 한 해는 글쓰기회원으로서 내게 커다란 공백이 생긴 시기였다. 교무업무를 맡으면서 담임을 하지 않아 아이들과 글 쓰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해를 지나고 보니 이 점이 너무 아쉬웠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올해도 같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또 한 해를 지난해처럼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궁리를 하던 끝에 우리 두 딸과 글쓰기 공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10년 넘게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고, 몇 년째 교사 글쓰기모임도 하고 있다면서 정작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쓰는 지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늘 신경이 쓰이던 터였다.
교사라는 직업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해오다 보니 그랬겠지만 ‘남의 집’ 아이들 글쓰기를 돕는 동안 우리 큰 딸은 벌써 중학생, 작은 딸은 5학년이나 되어버렸다. 그래서 담임을 하지 않는 올 한 해 정도는 우리 딸들을 학생 삼아 글쓰기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잘 된다면 딸들은 글쓰기 공부를 조금은 체계 있게 할 수 있어서 좋고, 나도 이걸 계기로 글을 쓰게 될 것이고, 나아가 글쓰기회 선생님들과 나눌 수 있는 간단한 글쓰기 지도사례도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 일이 되려면 반드시 딸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싶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무작정 밀어붙이다가는 안 그래도 사춘기라 민감한 아이들과 내 사이가 바닥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정한 아빠와 딸의 관계는 멀어지고 자칫 딱딱한 선생과 학생 관계가 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만약 이 일이 성사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생과 학생 관계로는 만들지 않는다, 딸들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쓴다, 함께 공부하되 조금 더 많이 아는 내가 이끔이 노릇만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리고 이루지도 못할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수준에서, 글을 앞에 놓고 대화의 폭을 늘리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글쓰기 공부 해볼까?
“어진 나라, 올 해 아빠랑 글쓰기 공부하는 거 어때?”
새 학년 개학날 저녁에 두 딸을 앞에 두고 며칠 동안 해왔던 생각을 넌지시 던졌다. 딸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별 거 아냐. 세상에 말 하고 글 빼면 뭐가 있겠니.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도 그렇지만 글이 참 많이 쓰이잖니? 근데 너희들은 글 쓰는 공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아빠랑 같이 해보자는 거지.”
내가 늘 글쓰기 한다고 떠벌려서 익숙해진 탓인지 썩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글을 쓰려고요?”
“내 생각으로는 일기 쓰듯 겪은 일 쓰기를 하다가 주제가 있는 글쓰기도 곁들여서 하면 좋겠어. 얼마 전에 미국 갔다 온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거기선 학생들이 저널 쓰기를 많이 한대. 들어보니 겪은 일 쓰기랑 주제글쓰기와 비슷하더라구. 어느 나라나 이런 글쓰기를 많이 하는구나 싶었지. 그래서 우리도 이런 글쓰기를 해보려고.”
두 딸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게 아닌가?
“아빠가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아빠도 글 쓸 거니까 같이 해보자.”
“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 건지는 좀 더 알아보고 그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새 학년 첫 일주일이 바쁘게 지나갔다. 아이들과는 다음 주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자고 약속하고 글쓰기공책도 하나 만들었다. 공책 표지에는 ‘우리 집 글쓰기교실’이라고 썼다.
그런데 첫 글쓰기로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아직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내가 아는 것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결국 실천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내용은 기본을 튼튼히 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기본이란 바로 사실의 기록이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코로 냄새 맡은 것, 이밖에 여러 감각기관이 입수한 정보와 그에 따라 일어난 생각이나 느낌을 기록하는 것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된다. 이것을 바탕으로 어느 때에 겪은 일을 쓰거나 여러 경험을 모아서 한 주제로 묶어 내거나 하는 것은 쓰고 싶은 사람의 뜻에 따라 또는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찾아보았던 자료 가운데 미국의 여러 학교에서 한다는 저널 쓰기에 조금 관심을 두고 살펴보니 거의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였다. 일기가 자신의 일상을 자신만을 위해 비공개로 작성하는 것인데 비해 저널은 일상을 주제로 삼아 어떠한 사실이나 사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 평소의 관심사 등 거의 모든 것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저널 쓰기는 형식을 두지 않고 일상을 주제로 풀어나가면서 쓰는 글이란 면에서 겪은 일 쓰기와 비슷한 점이 있고, 쓴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일기와는 다르고 우리 집 글쓰기와 비슷하였다.
■어설픈 첫 글쓰기
3월 21일 저녁에 작은딸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지금 글 쓰려고 하는데요. 근데 뭘 써야 돼요?”
어제는 큰딸이 또 똑같은 질문을 했다.
“뭐든지 좋으니까 쓰고 싶은 거 써봐라.”
“알았어요.”
글쓰기 절차를 정해놓고 글감정하기 단계부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진단평가’를 치른다는 생각으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사흘 뒤 저녁에 큰 딸이 공책을 들고 호들갑스럽게 다가왔다. 드디어 글을 한 편 완성한 모양이었다.
“아빠, 뭐라 하지 마세요!”
“알았다.”
큰 딸은 <봉사활동>이라는 주제로 썼다.
<봉사활동>
나는 요즘 봉사활동을 다닌다. 장유에 있는 '김해 보훈 요양원' 인데, 이 곳에 계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들께서는 좋은 일을 하신 분들이 많고 전쟁에 참여하신 분들도 계신다. 이 봉사활동은 중학생이 되면 봉사시간을 채워야 되서 하는 활동이다. 이번 봉사는 오케스트라 일부 멤버들과 같이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요양원에 가면 연주만 해드리고 온다.
첫날에는 강당에서 했는데 둘째 날에는 4층, 3층 그리고 2층을 돌아다니면서 하였다. 순서는 4층→3층→2층이었는데 아무래도 3곡을 연달아 연주하다 보니 한 층 한 층 연주할 때마다 팔이 너무 아팠다.
첫 번째로 4층을 연주하고 어르신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치매 걸리신 분들이 맞나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셨다.
그 다음에 3층으로 내려갔다. 연주를 다 하고나서 팔이 좀 아팠지만 어르신들께서 박수도 쳐주시고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2층에 갔는데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팔이 너무 아파서 바이올린이 계속 내려갔다. 하지만 난 참고 끝까지 연주를 했다.
2층에 계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들께서는 이 요양원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으신 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가 끝나고 반응이 없으셨지만 끝이라고 생각하니 좋았다.
내가 비록 봉사를 2번 밖에 못해봤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보람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난 이번 봉사를 통해 봉사를 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고 깨끗한지 알게 되었다. (3월 24일)
딸이 뭐라 하지 마라(야단치지 마라는 뜻)고 했는데 읽어보니 뭐라 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고 깨끗’하다는 느낌도 잘 떠올렸다. 애썼다고 칭찬해주었다.
작은 딸은 <플룻 연습>이라는 주제로 썼다.
<플룻연습>
어제 우암초등학교에서 11시부터 1시까지 플룻 연습을 했다. 내가 방과후가 아닌데도 이렇게 연습을 하는 이유는 한 달 뒤에 대회를 나가기 때문이다.
아빠차를 타고 우암초 교문 앞에 도착한 나는 3층으로 올라가서 플루트 교실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갔다. 플룻 쌤에게 인사를 하고 악보를 볼라는데, 이럴수가! 악보가 없었다. 그래서 플룻쌤한테 말하고 플룻 잘 부는 언니한테 악보를 빌려서 했다.
내가 이번 대회에 나가는 곡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연습을 매일 매일 꾸준히 해서 빨리 실력을 늘려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하고 플루트 교실을 나갔다.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서 꼭 대회에서 1등하고 싶다. (3월 24일)
이 글을 읽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딸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있었던 일을 단순히 문자로 옮겨놓았을 뿐 글이라고 할 수도 없고, 딸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게 뭘까? 악보를 안 가져가서 당황했다는 거야, 아니면 다음 달 대회에서 1등 하고 싶다는 거야?”
“글쎄요.”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야. 이렇게 일을 나열하지 말고 악보가 없을 때 도와준 선생님이나 언니한테 대한 고마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더 좋았겠다. 이런 글은 혼자 쓰는 일지에 기록해놓을 만한 내용이다.”
단순한 기록도 주제에 따라서는 좋은 글쓰기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단순 기록에서 벗어나려면 글감을 잘 잡아야 한다. 좋은 글감을 잡으려면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중요하고, 재미있고, 무섭고, 슬픈 일도 그냥 흘러 가버린다. 그래서 글 쓰는 내내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글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 점을 알려주고 첫 글쓰기를 끝냈다.
■글감 함께 찾기
첫 번째 글쓰기를 거울삼아 두 번째부터는 미리 글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글쓰기를 하게 되므로 이틀 전쯤인 목요일에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글감 찾는 날에 물어보니 다행히 큰 딸은 수학 시간에 추첨으로 받은 초콜릿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작은 딸은 아직 적당한 글감이 없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작은 딸이 따라 나오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선생님 마음에 안 들어요.”
“왜?”
“화도 많이 내고 너무 무섭게 해요.”
“학년 초라 그렇겠지. 원래 선생님들은 초반에 그렇지 않니?”
“그러긴 하지만 예전 선생님들은 안 그랬거든요.”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서 그래. 그럼 그 이야기를 이번에 쓰면 어떻겠니?”
“그럴까요?”
“글 쓰려면 선생님의 말과 행동, 또 친구들의 반응이나 행동도 잘 관찰해야 돼.”
“네.”
작은 딸과 나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각자 학교로 갔다. 억지로 짜 내도 글감이 잘 안 나오는데 마치 호박이 절로 굴러온 셈이 아닌가.
이틀 뒤 작은 딸은 <우리 선생님>이란 주제로 글을 썼다.
<우리 선생님>
나는 우리 반 선생님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왜냐하면 우리 선생님은 우리를 군대식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가) 예전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장난도 치시고 친절하셨는데 지금 우리 반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장난도 안 치시고 우리와 거리가 있다. (나) 그래서 좀 불편하다. 하지만 언젠가 좋아질 같다. 왜냐하면 아직 싫지는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애정이 없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우리에게 애정을 갖게 될지 모른다. 빨리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다. 숙제도 열심히 하고 독서도 많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좋겠다. (3월 30일)
이틀 전에 쓸거리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만 해도 이 주에는 제법 괜찮은 글이 나오겠거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까지 공책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가족모임 마치고 오면 봐야 할 TV 프로그램이 줄줄이 있어서 글 쓰고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을 같아 늦더라도 쓰도록 했다. 그런데도 TV 본다며 계속 미루더니 밤 11시 넘어서야 공책을 펴고 쓴 글이다.
“아빠, 다 썼어요.”
“어디보자. 야, 이게 뭐냐? 너무 내용이 없어.”
“이만큼이면 많이 쓴 거죠.”
“아냐. 이 정도론 안 돼. 지난번에 선생님 자세히 관찰한다고 했잖아. 많이 보충해야겠는 걸.”
“많이 못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쓸 게 없지. 내가 몇 가지 지적할 테니까 보완하자.”
“내일 하면 안돼요? 오늘은 늦었잖아요.”
“그러니까 일찍 썼어야지. 내일은 민들레 가는 날이니까 공부할 시간이 없어. 늦더라도 오늘 하자.”
보완할 점이란 첫째, 선생님이 군대식으로 대한다고 했는데 (가)에 직접 본 것을 예로 들 것, 둘째, (나) 이후에 쓴 막연한 생각을 지우고 바람이나 희망을 간단히 쓰기이다. 작은 딸은 감기는 눈을 비비면서 (가), (나)를 보완하여 고쳐 썼다.
<우리 선생님>
나는 우리 반 선생님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왜냐하면 우리 선생님은 우리를 군대식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누가 떠들면 선생님께서 "○○, 조용히 안 합니까?" 라고 하신다. 또 우리 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차렷 열중셔 차렷 열중셔" 하면서 우리를 조용히 시킨다.
또 우리 반 애들 중에서 장난을 많이 치는 애가 장난을 치면 "입 닫으세요. 어디에서!" 하면서 혼을 내신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꼭 군대에서 조교가 군인들을 훈련시키거나 잘못을 했을 때 벌을 주는 모습과 같다.
예전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장난도 치시고 친절하셨는데 지금 우리 반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장난도 안 치시고 우리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웃긴 춤을 추거나 웃긴 말을 하거나 할 때는 너무 수업 분위기를 흐리지만 않으면 받아주신다. 그래서 점차 우리선생님과 우리 반 친구들이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혼내시지 말고 예전 선생님들처럼 좀 더 친근하게 우리를 대하셨으면 좋겠다. (3월 30일)
“이제 좀 깔끔한 느낌이 드는구나. 글을 쉽게 쓰려면 마음이 필요해.”
“관심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그럼. 가족의 일이든 학교나 친구들의 일이든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쓸거리도 많아지고 쉽게 쓸 수 있어. 다음 주에는 좀 더 그렇게 해보자.”
“알았어요.”
큰 딸은 <마지막 초콜릿>이란 주제로 무난한 글을 썼다.
<마지막 초콜릿>
그저께 수학이 들었다. 우리 수학선생님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두 명씩 초콜릿을 준다. 하지만 22명 중에 2명은 걸리기 쉽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3주째 되는 어느 날, 7교시에 수학이 들어 들뜬 마음으로 세민이 옆에 앉았다. 수학이 두 번째 들어서 잠이 왔지만 워낙 선생님이 재미있게 수업을 하셔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드디어 초콜릿을 뽑는 시간이 돌아왔다. 선생님께서 남은 초콜릿이 두개 밖에 없다고 하셔서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께선 한번 걸린 애들은 패스하자고 하셨다. 이때 동안 한 번도 안 걸린 세민이와 나는 손을 붙잡고 긴장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START> 버튼을 누르시고,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완료> 소리가 나기에 눈을 떴더니 세민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은 초콜릿 2개 중 1개의 주인이 된다니, 나도 내심 부러웠다.
드디어 마지막. 여태껏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나는 걸리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12번이 TV 화면에 딱! 뜨는 게 아닌가?! 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진짜 나야?" 라고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선생님께 초콜릿을 받으러 나갔다. 내가 초콜릿의 마지막 주인이 된 것이다.
초콜릿을 입에 쏙 넣으니 처음에는 조금 쌉사리 하더니 점점 녹을수록 달콤한 맛이 입안 전체에 퍼졌다. 세민이와 나는 수업이 끝날 때 까지 기쁨을 놓지 못한 채 초콜릿 얘기만을 하였다.
작년에 작은 외숙모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마지막 남은걸 먹는 사람에게 복이 온대."
나는 너무 기뻐서 초콜릿의 맛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입을 쩝쩝 거렷다. 비록 이번에 먹으면 언제다시 먹을지 모르지만 늦게라도 초콜릿의 맛을 알게 되어 아주 기뻤다. (3월 30일)
이 글에서 숫자를 한글로 바꿔 표기할 부분이 있었으나 맞춤법이나 표기 문제는 다음에 한꺼번에 공부하기로 하고 넘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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