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글쓰기교실(3)
∎작은 문화가 된 글쓰기
3월부터 시작한 우리 집 글쓰기교실도 어느 덧 여섯 달을 넘겼다. 시험이 있거나 집안 일정 때문에 더러 글쓰기를 빼먹기도 했지만 전체로 보면 꾸준히 한 셈이다. 분량도 제법 된다. 한 주에 한 편씩 쓴 글이 모여 공책 한 권을 다 채웠다. 그래서 새 공책도 준비했다.
아이들은 가끔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주마다 글쓰기 하는 게 어느 정도 습관이 된 듯하다. 요즘은 묻지 않아도 이번에 쓸거리를 정해 놓았다는 둥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특히 큰 아이는 중학교 생활이 즐거운지 뭐든지 열심히, 즐겁게 한다. 그 속에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다. 어떤 날은 의욕이 넘쳐서 쓴 글을 전화기로 찍어서 보내놓고 빨리 감상을 보내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읽어보면 대개 헛웃음만 치고 말지만 말이다. 이럴 땐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썼구나, 네 생각을 잘 밝혔구나 해놓고 문제점을 댓글로 써주며 넘어간다.
어쨌든 우리 집에서 글쓰기는 작은 문화가 되었다. 아이들 엄마만 글쓰기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강요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는 늘 바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글쓰기를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나? 내가 하는 잔소리는 한계가 있으니까 자기도 아이들하고 글 이야기 좀 나눠라.”
가끔 내가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다.
“나도 이야기 한다. 당신 없을 때 아이들하고 글감을 뭐로 할지, 어떻게 쓸지 이야기 안 하는 줄 아나. 그리고 나는 학교 가면 학교대로 바쁘지, 집에 있으면 밥 하랴 빨래하랴 얼마나 바쁜데 그렇게 말하노?”
밥 하고 빨래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바로 입을 닫는다. 이런 통에 글 쓰자고 했다간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
나는 매주 주말마다 글쓰기를 한다. 공책에 매주 한 편씩 겪은 일을 적거나 나의 생각을 적는다.
나는 처음에는 글쓰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귀찮기도 하고 또 글쓰기 소재가 없는 날에는 소재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돼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지금도 글쓰기를 하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서 속에 있던 답답한 일도 꺼내고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도 공책에 자유롭게 쓰다 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글 쓰는 실력도 점점 늘게 되고, 가끔 글을 잘 써서 칭찬받을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어떤 날은 소재가 팍팍 떠오르고 글을 매끄럽게 잘 써서 칭찬을 받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소재도 떠오르지 않고 글을 매끄럽게 쓰지 못해서 혼이 날 때가 있다. 혼이 날 때면 나는 기분이 안 좋다.
그래도 혼이 나는 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쌓아둘수록 좋은 거라고 누가 말한 것 같다. 나는 글쓰기 경험이 많으니까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대학에서는 에세이를 많이 쓴다고 한다. 만약에 내가 꾸준히 글쓰기를 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면 나중에 대학에 갔을 때 잘 활용해서 에세이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는 참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8.14)
초등 5학년인 작은 아이는 아직은 큰 아이 보다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도 글쓰기를 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또 글에서 써 놓은 것처럼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까닭은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많아서이겠지만 결과에 대한 기대나 긴장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계획은 글쓰기 공부가 끝나는 내년 2월에 써 놓은 글을 모아 작은 문집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도 무척 기다리고 있다. 자기들이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또 문집이 나오면 우리 식구들이 참여하는 모임 사람들에게 나눠줄 예정인데 이것 때문에 아이들이 좀 더 긴장감을 갖고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 밝힌 것처럼 우리 가족을 포함한 일곱 가족이 모이는 독서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에서는 책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글쓰기도 양념처럼 곁들인다. 모임을 이끄는 선생님은 여행을 다녀오면 빠지지 않고 여행기를 써서 읽기 편하게 제본하여 나누어주신다. 또 누구네 집 아들은 국토종단 걷기행사에 참여하거나 힘든 산악트래킹을 다녀오면 그 경험을 글로 써와서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분위기가 이러니 우리 아이들도 동참하고 또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일었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가 우리 아이들의 삶을 크게 바꾼다거나 글쓰기 ‘실력’을 갑자기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닭장 같은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삶이 바뀔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 또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겪은 일이나 생각을 쓴다고 글 쓰는 힘이 불끈 솟아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다만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삶을 한 번 둘러보는 자세를 기르면 그것으로 그만이고, 글을 앞에 놓고 우리 식구들이 한 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마련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또 일 년 동안 쓴다는 목표를 정하고 끝까지 실천하며 우리 아이들이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기르고, 쓴 글을 이웃과 나누는 시간까지 가진다면 그 기쁨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언니와 동생 사이
“언니야, 오늘 치마 한 번 입어도 돼?”
“언니야, 바람막이 좀 빌려줘.”
사춘기의 꼭대기를 지난 언니와 달리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작은 아이는 요즘 하루가 바쁘다. 하루에 샤워 두 번 하기는 기본이고 날마다 머리를 감지 않으면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 씻기가 끝나면 이 옷 저 옷을 서너 번씩 바꿔 입으며 마음에 드는 외출복을 고르느라 문턱이 닳도록 큰 거울이 있는 현관을 들락날락한다. 이렇게 바뀐 습성 때문에 즐기던 늦잠도 스스로 끊고 머리 감고 샤워하고 옷 고르려고 일찍 일어난다.
머리 감기, 샤워하기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비해 옷 고르기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옷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는 처지에 있다 보니 작은 아이는 아침마다 언니에게 옷을 구걸한다.
이럴 때 큰 아이가 내 놓는 반응은 언제나 시원찮다. 물려 입을 걸 예상하고 자기한테 먼저 옷을 사 주는데도 큰 아이는 공동 소유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옷이라고 착각해버린다. 자신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기 때문에 입고 가지 않을 옷인데도 주지 않고 동생의 애간장을 태운다. 글쓰기 할 때는 동생한테 옷을 많이 빌려줄 거라고 해놓고도 말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글이지만 이야기 흐름에 필요할 것 같아 다시 올린다.
<대견스러운 내 하나뿐인 동생>
나는 이번 주 금요일에 하는 파자마 파티를 위해 더러운 내 방을 청소하기로 하였다. 서랍에서 버릴 건 버리고 차곡차곡 정리하다보니 어느 새 서랍이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애들이 동생 서랍도 볼까봐 어지러운 동생 서랍도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책상 밑에까지 말끔히 청소를 하고 동생 서랍을 여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서랍에는 내가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 서랍의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첩도 내가 쓰다가 동생한테 준 것들 밖에 없었고 새 물건은 거의 없었다.
생각해보니 옷들도 예전에 내가 입었던 것들이나 내가 입는 것들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자기 옷은 3~4벌 정도 될까? 신발도 내가 신던 걸 신었고, 필통도 내가 새로 살 때마다 준 안 쓰는 것(헌 것)들 밖에 없었다. 항상 TV나 만화책을 봐도 언니나 형들만 새 거, 동생들은 헌 물건만을 사용했었다.
예전엔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성숙해지고 나서는 약간씩 동생한테 미안한 구석이 있었다. 근데 더 슬픈 건 동생은 그런 것들도 항상 불평 없이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초딩 때 안 쓰는 수첩을 줄 때, 필통을 줄 때 등 동생은 그것도 좋아라 하며 절대 새 것을 달라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잠깐 밖에 나갈 일이 생겼는데 동생이 내 옷을 한 번만 빌려달라고 해서 난 싫다고 대답하였다. 결국 엄마의 말을 듣고 빌려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했다. 얼마나 내 옷이 입고 싶었을까. 항상 헌 옷만 입는데도 불평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동생한테 옷을 많이 빌려줄 것이고 또 신발도 많이 빌려줄 것이다. 물건은 헌 게 아니라 새 것을 줄 것이고 수첩도 사줄 것이다. '동생'이라는 말 때문에 항상 헌 것을 가져도 불평하지 않는 내 동생이 너무 대견스럽고 기특했다. (6월 2일)
큰 아이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옷을 놓고 작은 아이와 얼굴을 맞대면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옷 빌려주는 대신 무얼 달라든지 조건을 걸고 합의돼야 마지못해 인심 쓰는 척 하며 내준다. 큰 아이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은 아이는 늘 불만을 표시한다. 그래서 티격태격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드물다.
작은 아이는 6월부터 9월까지 무려 세 번이나 언니를 글감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6월 19일 날 쓴 글에 언니에 대한 불만이 잘 나와 있다.
<우리 언니>
요즘, 아니 처음부터 우리 언니는 나한테 까칠하다. 며칠 전에 내가 엄마한테 혼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엄마가 나한테 혼내는 걸 듣고만 있는데 갑자기 언니가 나한테 왔다. 그러더니 엄마한테 내가 잘못한 것, 엄마 아빠가 모르는 나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니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나도 엄마 아빠가 모르는 언니의 잘못을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지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언니를 위해서 엄마 아빠한테 말도 안 하고 있는 것인데 언니는 내가 엄마한테 더 혼나라고 고자질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언니가 내가 갓난아기 때부터 나를 많이 괴롭혔다는 것을 들었다. 엄마 말로는 언니가 내 눈을 찌르고 꼬집고 때리고 정말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
언니에게는 악마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엄마 아빠 앞에서는 밝다가 내 앞에서만 까칠해지는 언니의 성격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언니는 어릴 때 나를 괴롭혔던 것이 습관이 돼서 나를 무의식적으로 괴롭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언니한테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언니가 나를 괴롭히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6.19)
아마 형제자매가 있는 집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있을 것이다. 둘이서 옷 다툼을 하거나 문제가 있을 때 아내나 내가 하는 역할은 단순하고 미미하다. 양보해라, 이해해라고 할 뿐 특별히 조치할 일이 없다. 강제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겉으로는 일이 빨리 해결되겠지만 둘의 마음까지 깔끔하게 풀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이서 언제나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우리 부부가 싸우거나 집에 없을 때 또는 어른 처지에서 TV나 휴대전화 문제를 들먹이면 둘은 엄청난 단결력을 과시한다. 찰떡궁합이 되어 히히덕거릴 때도 많다.
<언니는 별명제조기>
며칠 전 저녁에 거실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는 언니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나에게 쪽지를 써서 던졌다.
쪽지의 내용은 정말 황당했다. 언니가 나에게 보낸 쪽지 속에는 자신이 공주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언니의 쪽지 내용을 맞받아치려고 이렇게 적었다.
‘나 라푼젤이야^^’
나는 내가 라푼젤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적어서 언니에게 던졌다. 근데 언니가 쪽지 내용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되묻는 쪽지를 던졌다.
‘꼼젤이가 뭐야?’
나는 이 언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쪽지를 보냈다. 이번엔 아주 큰 글씨로 써서 보냈다.
‘나, 라푼젤이라구’
이 쪽지를 받은 언니는 갑자기 온 몸으로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언니는 자신이 왜 웃었는지 설명해주었다. 언니는 ‘나 라푼젤이야’라고 적혀 있는 쪽지는 글씨를 작게 적고 띄어 쓰지 않아서 ‘나라 꼼젤이야’ 이렇게 알아들었다고 했다. 근데 내가 두 번째로 보낸 쪽지에 ‘나, 라푼젤이라구’라고 적혀 있어서 웃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이제 내 새 별명은 ‘꼼젤이’가 되었다고 자꾸 꼼젤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별명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알고 황당했다.
우리 언니는 정말 별명을 잘 짓는 것 같다. 분명 내 이름은 ‘이나라’인데 언니의 입에서는 ‘이나루’, ‘이나수’, ‘이나룸’, ‘저나라’ 등등 정말 많은 별명이 쏟아져 나온다.
가끔씩은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내 별명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내 별명을 부른다는 건 그만큼 친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내 특이한 이름과 별명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더 잘 기억해주니까 좋을 때도 있다. 앞으로는 언니가 나를 어떻게 부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9.9)
둘이서 인상 쓰며 싸우기도 하고 언제 싸웠냐는 듯 잘 지내는 것 모두 부모로서 볼 때는 귀한 모습이다. 커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벌어진 일도 많지만 엄마 아빠 즉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도 제법 많다. 아이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바로 형제자매나 엄마 아빠이기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엄마 아빠가 등장하는 글의 내용은 아무래도 즐거운 일 보다는 부딪힌 일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엄마, 아빠한테 들은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한 생각은 좋은 글감이 된다.
<TV 보기>
나는 내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TV를 너무 조금만 본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 아빠께 이런 말을 하면 엄마 아빠는 이런 말을 하신다.
“야, 너희 주말에 많이 보잖아.”
나와 언니가 주말에 TV를 많이 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평일에 TV 보는 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주말에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평일에는 더 재미있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빠한테 또래아이들 보다 너무 TV를 조금 본다고 말하면 아빠는,
“TV를 많이 보는 애들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런 아빠의 말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빠도 아빠 학교 학생들과 언니와 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좀 더 믿을만한 주장을 한다면 나는 절대 이런 주장을 하지 않겠지만 아빠의 주장은 전혀 믿음이 안 가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아빠가 평일에 하는 드라마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 드라마는 이종석, 이보영이 나오는데 친구들도 재미있다 하고 저번에 나와 언니가 봤을 때도 아주 재미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6.29)
전에 썼던 글에도 밝혔지만 우리 집에서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은 다섯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정해서 일방으로 알려준 것도 아니고 모두 동의해서 정한 기준이다. 프로그램 다섯 가지를 정할 때 평일이냐 주말이냐를 구분하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제 스스로 주말에 하는 다섯 가지 프로그램을 정해놓고는 평일에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생기니까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이에 비해 큰 아이는 월화드라마나 수목드라마 가운데 한 가지를 정하고 나머지 네 가지를 주말과 휴일로 잡아 놓아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언니가 드라마 볼 때 안 보는 척 하며 곁눈질로 보고 있는 것을 고개 돌리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적당히 눈감아주는 수밖에.
<독서실 소동>
난 어제 내 친구 민경이를 따라 독서실을 구경하러 갔다. 도서관은 이 때까지 많이 가 봤지만 독서실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했다.
독서실에 올라가보니 들어가는 입구가 있고, 왼쪽에는 신발장, 오른쪽에는 긴 복도가 있었다. 신발을 벗고 민경이가 오라는 곳으로 따라갔다. 먼저 신발장으로 쭉 가니 카운터가 있고 카운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민경이는 카운터에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커튼이 처진 20개는 넘는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시험기간인데도 사람이 민경이 밖에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민경이가 자리 잡은 책상의 커튼을 치고 들어가니 아주 간단하게 책상과 의자, 스탠드, 물건 담을 칸 등이 있었다. 신기해서 요리조리 둘러봤는데 방 안도 시원하고 조용해서 좋았지만 불이 꺼져있어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다.
난 사실 조용한 곳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도서관에도 안 갈려고 했는데 독서실에 와보니 너무 공부가 잘 될 것 같았다. 민경이 말로는 자기도 원래 조용한데서 공부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집중도 잘 되고 좋다면서 말을 해줬다.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독서실에 컴퓨터가 있다고 해서 민경이한테 보여 달라고 했다. 방을 나가서 또 카운터를 지나고 신발장도 지나 긴 복도를 지나서야 컴퓨터실이 나왔다. 컴퓨터도 있었는데 그 안에 또 방이 있었다. 그 방엔 1인실, 2인실 등 일반실을 제외한 나머지 방들이었다.
이곳까지 보고나서야 드디어 독서실 탐험이 끝났다. 난 곧바로 민경이에게 집에서 밥 먹고 엄마가 된다 하면 독서실에 온다고 말하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딴 판이었다. 엄마는 지금 가서 몇 시간 있지도 않을 건데 왜 굳이 7000원이나 투자 하냐면서 안 된다고 하셨다. 또 아빠는 된다고는 하셨지만 ‘놀면 놀고 공부하면 공부해라’는 말을 하셨다.
난 엄마랑 아빠가 단숨에 된다 하고 7000원을 주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민경이에게 문자로 못 간다고 하였다. 내가 계속 서운해 하니까 엄마가 정 그러면 주말에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또 민경이에게 문자로 주말에 갈 수 있어서 주말에 보자고 하였다.
바로 어제 일인데도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니지만 그 땐 내가 많이 서운했나 보다. 하지만 난 우리 엄마 아빠가 내 공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줬으면 좋겠다. 철없는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나의 한바탕 독서실 소동은 어제로 끝이 났다. (9.15)
큰 아이는 사춘기 소녀답지 않게 엄마 아빠랑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다. 중학교 올라가서 친구 문제로 조금 갈등을 겪은 것 외에는 정말 별 일 없이 성장하고 있다. 늘 기분 좋고 늘 웃음 가득한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이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서실 문제도 민감한 아이였다면 갈등의 소재가 되기 충분하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단지 서운하다는 표현만 하고 엄마 아빠 의견을 수용하는 선에서 정리해버렸다. 부모로서는 무척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이 일이 있고 돌아오는 휴일에 큰 아이는 목적을 이루었다. 다녀오더니 공부가 아주 잘 되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나 잘 됐는지 알 길은 없지만 본인이 잘 됐다고 그러지 않았겠나 싶다.
∎매체 활용하기
학교 가기, 학원가기, 방문학습 하기, TV나 휴대전화 보기, ……. 삶이 단조로운 우리 아이들에게 글감 찾기는 어쩌면 괴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이들은 글감 찾기가 어려워서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럴 때는 몸으로 겪은 일 대신 책이나 방송,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간접으로 경험한 일에서도 쓸 만한 글감을 골라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내가 보는 신문 기사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이 있으면 툭 던지며 읽어보라고 한다. 읽고 안 읽고는 아이들의 판단에 따른다.
<일베 사용설명서>
집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 탁자 위에 있는 ‘시사 IN'이라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사 IN' 표지에는 ‘일베 사용설명서’라고 적혀 있고 어떤 사람이 귀여운 가면을 들고 있었다. 나는 ‘일베’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궁금했고, 일베가 가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해서 ’시사 IN‘을 펼쳐 일베에 대해 나와 있는 부분을 읽어보았다.
‘일베충’이라 불리는 일베 이용자 몇몇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다. 한 대형매장에서 판매하는 TV 화면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과 닭처럼 보이는 사진을 합성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어 'oo노'라 붙이고, 여성을 '김치년'으로 부르며 비하했다.
나는 아직 일베충이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몇몇이 하는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베인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른다. 일베 이용자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재미로 사람을 조롱하고 욕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일베가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일베 이용자 중 몇몇이 하는 그런 행동들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 때문에 일베들은 무조건 나쁘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 역시 똑같이 나쁜 사람이다. 그냥 사람들이 서로 존중해주고 어울리려고 노력한다면 이렇게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 (6.2)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에게 ‘일베’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하지만 우연히 이런 문제를 만나고 또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글감으로 삼은 점이 참 좋았다. 그래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던 글이다. 아래 글은 큰 아이가 썼다.
<물>
난 며칠 전 생방송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사이트를 찾으며 인터넷을 뒤지다가 ‘세계 물의 날’이라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개의 사이트들이 뜨길래 제일 첫 번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모두 영어로 되어있어서 바로 사이트를 나와 그 다음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여러 메뉴들이 뜨길래 드래그 해보니 물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었다. 물의 소중함부터 물에 관한 만화, 물을 아껴 쓰는 법 등 꽤 좋은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난 이끌리는 대로 물을 아껴 쓰는 법이 담겨 있는 코너에 들어가니 가정에서 물을 아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다. 내가 요즘 인강을 많이 듣다 보니 필기하는 버릇이 생겨서 내가 할 수 있는 목록들을 적으려고 종이를 꺼냈다. 여러 개를 읽어보는데 아주 공감되는 방법이 있었다.
대체로 여자들이 주로 하는 물 낭비인데, 화장실에서 용변소리를 감추기 위해 변기 밸브를 한두 차례 더 내려 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이다. 나도 방학 전에 학교에서 마법을 할 때 마법대 뜯는 소리를 감추려고 물을 여러 번 내린 적이 아주 많다. 또 내 친구 중에서도 여자가 용변 볼 때 매너라면서 밸브를 여러 번 내린 적이 있다.
난 물을 내릴 때 소리를 감추는 것만 생각했지 물이 낭비될 거라는 생각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더 충격 먹은 건 물을 한 번 내릴 때마다 물이 약 13리터나 소비된다는 것이다. 13리터면 우리 집에서 사흘~나흘 정도 마실 수 있는 물인데 내가 그 물을! 그 아까운 돈들을 낭비하고 있었다니! 정말 후회된다. 설사 그 물이 식수가 아닐지라도 쓰임새가 많았을 텐데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몰랐던 내가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물을 절약해야겠다. 또 아빠나 엄마께 절수형 샤워헤드를 설치해보는 게 어떨까 라고 물어봐야겠다. 가격도 저렴하고 물도 절약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이런 방법 말고도 샤워시간 줄이기, 휴지를 변기에 넣어 물 내리지 않기 등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아주 많다. 그래서 얼른 나라도 물 낭비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물론 세계 인구는 아주 많아서 나 하나가 물 절약에 나선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니 내가 나중에 큰 공을 세울 지도 모른다. (8.18)
글이란 게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 것만 쓰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관념이 되기 쉽다. 하지만 무엇을 찾아보거나 알아보는 과정에서 든 생각을 글로 쓰면 차원이 달라진다. 문제는 실천인데 당장은 안 되더라도 이런 경험이 쌓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을가꾸는글쓰기 > 우리집글쓰기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집 글쓰기 교실(5) (0) | 2014.12.24 |
---|---|
우리 집 글쓰기 교실(4) (0) | 2014.12.24 |
우리 집 글쓰기 교실 (2) (0) | 2014.12.24 |
우리집 글쓰기교실(1) (0) | 201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