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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글쓰기 교실(5)

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19:43

우리 집 글쓰기교실(5)

 

   

 

글 이야기는 지난 호에서 연재를 마치려고 했는데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바로 감상문 쓰기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이 부분을 먼저 마무리 짓고 이어서 지난 일 년 동안에 했던 글쓰기 공부를 평가한 내용과 문집 만들기, 계획도 함께 쓰려고 한다.

 

감상문 쓰기

교실일기나 보도 자료 같은 글을 많이 쓴 탓일까? 나는 사실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쓰기를 좋아하고 또 교실에서 아이들에게도 많이 쓰게 한다. 대개 겪은 일 쓰기 또는 서사문이 이런 글이다. 우리 집에서도 다른 글 보다는 겪은 일을 많이 쓰도록 권한다. 겪었던 일을 그대로 쓰는 것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일을 계기로 그 일과 연관된 다른 기억을 모아서 묶어 쓰는 글도 쓸 필요가 있다. 아니, 저절로 이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몇 년 전에 사라지는 엽서를 보며 엽서에 얽힌 옛 추억도 떠올리고 또 흔치 않은 엽서를 사러 여기저기 헤맸던 경험, 엽서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말 엽서가 살아났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것저것 주워 모아썼는데도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주제를 미리 주지 않아도 얄미운 동생이나 고집쟁이 아빠에 관해 쓰겠다는 경우가 있다. 써보라고 하면 주머니에 꼬깃꼬깃 쑤셔두었다가 꺼내 펼쳐놓는 종이돈 같은 기억을 쏟아놓는다. 대체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할 때 글도 진실하게 나온다. 이렇게 쓴 글을 모두 감상문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달리 갈래가 없으므로 감상문이라고 해 둔다.

이런 글에는 대개 시간 순서가 없고, 일이 일어나는 공간도 뒤죽박죽 섞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어느 글 보다 글쓴이의 생각과 느낌이 살아있어서 읽을 맛이 난다.

감상문은 마음이 절실하게 일어나면 그대로 써내려가도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음식을 만들 때 양파나 채소를 준비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재료를 잘 준비했다고 해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힘이란 그 문제에 관해 생각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쓰면 애써서 써도 잘 썼다는 느낌이 적다.

이런 까닭에 나는 평소에 일부러 어떤 주제를 주고 글을 써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이런 글을 쓰겠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놓도록 돕는 편이다.

하루는 큰 딸이 글감을 고민하더니 느닷없이 아빠의 휘파람을 주제로 써보겠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딸은 지나간 일이 잘 생각나지 않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이렇게 썼다.

 

<아빠의 휘파람>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아빠가 어떤 기사를 보여주셨는데  기사가 음식습관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라는 내용이었다 아빠가 워낙 예전부터 음식관리를 하셔서  잔소리를 하실  알고 아빠와 말싸움을 하다가 그만 심한 말을 해버렸다그래서 나는 나대로 화나서 소파에 앉아있고 아빠는 아빠대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뒤에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손으로는 딴 짓을 하면서 눈은 아빠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그런데 갑자기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빠가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 아빠가  말에 상처를 받고 슬퍼하거나 화가   알았는데 휘파람을 불다니 뜻밖이었다

아빠가 휘파람을 부니 ‘휘파람은 기분 좋을  부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의 화가 풀린  알고 말을 거니 선뜻 대답해주셨다 뒤로는 마치 화해를  것처럼 계속 대화를 했다

이런  말고도 아빠의 휘파람 소리는 자주 들려온다밤에 조용히 숙제를 하고 있을 때 밖에 나간 아빠가 주차장에서 휘파람을 부는 소리를 들었고엘리베이터에서 일정한 박자와 음으로 불며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빠는 샤워를 하면서도 휘파람을 불고 내가 시험공부를 한다고 조용히 하라고 해도 계속 휘파람을 분다이렇게 아빠는 휘파람을 시도 때도 없이 부는데 이런 게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예전에도 똑같았다

아빠가 어방초에서 근무하던 총각시절밤까지 남아 일을 하지만 여전히 입은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그런데  다음날 아빠 학교  100m 떨어진 곳에 절이   있었는데  절에서 전화가 왔다밤에 누가 계속 휘파람을 분다며 조용히 시켜달라는 전화였다아빠는  애기를 교감선생님께 전해 들었지만 대충 듣고 흘러버렸다

   아빠가 밤에 남아서 일을 하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는데  여자목소리가 창문 밖에서 났다창문을 열어보니 절에서 내려온  여자 분이 ‘기도를 못하겠다기도  하자우째 그리 휘파람을 부노?’ 라며 신경질을 내고 가셨단다그래서 아빠는  뒤부턴 휘파람을 줄였다고 하셨다

아빠의 이런 얘기를 들으니  재미있긴 한데 사실  아빠가 휘파람 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시험 기간에 휘파람 불지 말라고 거실에 종이까지 붙여놨는데 아빠는 계속 불어서 신경 쓰였고  밤에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부르면 혹시나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빠가 휘파람을 나쁜 뜻으로 부는 게 아니고 가끔은 유명한 노래도 예술적으로 나오기도 해서 앞으론 즐겁거나 좋은 노래만 부르고 남들에게 피해가  가게 불렀으면 좋겠다 . (1113

 

그 동안 내 휘파람이 여러 모로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아빠는 휘파람을 참 많이 분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서 불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아빠 기분이 상할까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나한테 취재한 내용이 군더더기처럼 보이지만 다른 내용과 무난하게 섞였다.

보통 휘파람을 기분 좋을 때 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기분 하고는 상관없이 분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습관일 뿐이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도 많았는데 고질병 같이 오래돼서 잘 고쳐지지 않는다.

며칠 전에 아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휘파람 때문에 수군거린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조심하라고 부탁했다. 낮에는 모르겠는데 특히 밤에 휘파람 소리 들리는 것을 주민들이 많이 싫어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이 쯤 되면 고쳐야 하는데 수십 년 묵은 습관이라 참 힘들다.

이 글은 딸이 스스로 쓰겠다고 한 점, 부족한 이야기를 보충하려고 나한테 이야기를 들은 점, 고쳐가면서 두 주에 걸쳐 쓴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글로 아빠가 가진 문제를 일깨워준 점에서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은 감상문이다.

큰 딸 공책에는 감상문이 몇 편 더 있다. 그 가운데에서 꿈에 관해서 쓴 글은 하나 더 예로 든다.

 

< 꿈은?>

 꿈은 무엇일까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화가, 2학년  선생님, 3학년 때는 패션디자이너, 4학년 때는 과학자  발명가, 5학년  다시 패션디자이너, 6학년 때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인 지금의  꿈은 뭔지  모르겠다

3    동안은 검사를 꿈꿔왔었는데 다시 꿈이 없어졌다 친구들은 거의  꿈을 가지고 있는  같은데 내가 늦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인터넷 강의에서도책에서도, TV에서도  같은 목표를 가지면 확실히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던데 말이 사실이면  얼른 꿈을 찾아야 한다하지만  말을 믿을  없는 게 어떤 책에선 꿈을 천천히 찾아도 된다고 해서이다 사실  말만 믿고 꿈을 찾아보지 않은  같다

그래도 지금보다  깊은 생활을 하려면 (목표)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요즘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그래서 내가 마음이 가는 직업인 '선생님' 대해 생각해 보았다저번에 국어선생님께서 말해주신 직업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은 안정적인 직업인  같다옛날에는 훈장님이라 불렸다지어쨌든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 많은 사람들 앞에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겠지아주 만약에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되기 전에 사람들 앞에 서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좋은 점이 많지만   점이 가장 좋을  같다국어선생님께서도 말해주셨는데 바로 제자들이 생긴다는 점이다국어선생님은 제자가 어른이 되서도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빠랑 엄마도 물론 연락하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어쨌든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어른이 되서 자기를 찾아오면 기분이 뿌듯하고 보람 있을  같다

이렇게 보니 선생님이란 직업도  괜찮을  같다나도 얼른 생각이 확실해져서 꿈을 찾아  깊은 삶을 살고 싶다. (811)

 

<아빠의 휘파람>이 미리 내용이나 쓰는 순서를 생각하여 썼다면 이 글은 나오는 대로 쓴 글이다. 그런데 몇 번을 읽어봐도 <아빠의 휘파람> 보다는 이 글이 읽기에 편하다. 앞글에 비해 덜 거칠고 자연스럽다. 나만의 느낌인가. 이건 아마도 멋진 재료를 써서 준비한글 보다는 저절로 우러나오는 마음을 표현한 감상문이 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다가온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다음은 작은 딸이 쓴 감상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쓰고 싶다더니 자기 이름을 주제로 썼다.

 

 

 

< 이름의 >

오늘 6교시 사회시간이었다역사를 공부하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채영아수업에 집중해야지우리나라가

나는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는  알고 흠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보았다그런데 옆에 있던 정영훈이

이나라 이나라.”하자 다른 친구들도 살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선생님도 조금 웃다가 계속 수업을 진행하셨다.

요즘 사회시간만 되면 나라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다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바라본다 이름이 바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름 때문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집에서 아빠는 나를 부를  항상 “나라야!”라고 하지 않고 “~~~!”라고 한다 아침에 나를 깨울 때는 “우리나라 일어나라라고 하며  이름으로 운율을 넣어 말한다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약이 올랐는데 요즘은 워낙 이런 소리를 많이 들어서 무덤덤하다.

지난 1학기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오케스트라에서 같은 플룻 파트인 김민성이 나를 “왜나라라고 부르며 놀렸다요즘엔  줄어들었지만 김민성은 지금까지도 나를 “왜나라라고 부른다우리나라나 저나라명나라 같은 말은 그래도 참을만한데 일본을 뜻하는 왜나라는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래도  이름이 나쁜 점만 있는  아니다얼마  저녁에 엄마가 

우리 나라 되게 유명하네매주 월요일마다 전교에 있는 애들이  이름  부르잖아.”하셨다나는  말뜻이 뭔지 몰라서 “?”이라고 하니 엄마가 설명해주셨다

애국가에 '우리나라 만세' 나오잖아애들이 전부  이름 부르면서 만세 하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가끔 애들한테 놀림감이 되긴 하지만  이름엔 좋은 점도 있는  같아서 다행이다. (1010)

 

초등학생이 쓴 감상문은 서사문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생각이 많이 들어가면 감상문, 그렇지 않으면 서사문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이 글도 앞부분과 뒷부분에 그 날 있었던 일을 써놓아서 전체로 보면 서사문인 것 같지만 이름에 얽힌 여러 경험과 생각을 떠올려 써놓았으니 감상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작은 딸은 평소에도 이름에 민감하다. 대개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로 신경 쓰곤 하는데 이 날은 수업 시간에 일이 생겨서 마음에 또렷이 남았던 모양이다. 작은 딸이 이름을 두고 불평할 때마다 우리는 부르기 좋고 쓰기 쉽고 한글 뿐 아니라 영어로도 간단하게 쓸 수 있다며 설득하곤 한다. 그래도 늘 이름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큰 딸 이름은 어진’, 작은 딸 이름은 글에서 밝힌 대로 나라. 보통 두 딸을 함께 부를 때 어진나라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부를 때도 어진나라 아빠또는 어진나라 엄마로 부른다.

딸들 이름을 지을 때 다른 건 몰라도 한자 보다는 우리말로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질다에서 어진,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골라 이름을 짓게 되었다. 뭔가 의미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의미보다는 그저 우리나라가 어진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감상문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학교에서 숙제로 내 주는 글쓰기이다.

큰 딸은 가끔 학교에서 글감을 받아와서 글을 쓴다. 물의 날을 맞아서 받은 과제는 ’, 과학의 달에는 환경과 과학을 주제로 쓰는 식이다. 한 번은 교내 백일장 대회를 한다며 게으름이라는 주제를 받아온 적도 있다. 이렇게 쓰는 글을 모두 감상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주제에 맞게 내용과 차례를 생각하며 쓰는 점에서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런 글은 쓰기 전에 준비를 잘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머릿속에서만 만들 수 있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기 쉽다. 아니, 준비를 해도 대부분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삶에서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딸이 부탁하니 도와줄 수 없는 처지라서 내용을 준비할 때 최대한 경험을 잘 살려 쓰도록 하고, 말하고 싶은 핵심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을 쓰도록 한다. 받아온 주제가 정말 우연히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은 아니라서 이런 글쓰기는 언제나 힘겹다.

 

우리 집 글쓰기 교실 평가

지난 한 해 동안 운영했던 <우리 집 글쓰기 교실>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됐다.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문집도 만들어야 하고 곧 새 학년도 시작되고 해서 지난 119일 글쓰기를 마지막으로 글은 더 쓰지 않기로 했다. 남은 기간은 문집 만드는 데 공을 들이기로 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처음 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도 되돌아보고,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도 떠올려본다. 시작도 어설펐고 끝도 어수선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일 년을 끌어온 글쓰기를 끝낸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기분 지울 수 없다.

 

<글쓰기를 마치며>

 달만 있으면 내가 글을   1년이 되는 날이다오늘 내가 이때까지  글을  읽어보았다 글을 읽으니 '내가 글을 1 동안 썼구나'라는 뿌듯함 보다는 약간의 창피함이 느껴졌다

 하나하나마다 반대쪽 페이지에 아빠의 글 평이 적혀있었다그런데 글을 잘못 쓰는내가 봐도 정말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얘기들을 적어주셨다물론  중에도 지적하는 점이 당연히 적혀있었다하지만 아빠는 거의 좋은 말들만 하시고 글을 짧게 써도 뭐라 하시지 않았다

사실  아빠가 매주 글쓰기 주제 정했니?, 언제 쓸거니 그런 말을 하실 때마다 글을 쓰기 싫을 때도 있었다그래서   때도 많았지만 아빠는 최근까지도 조금만  하면 1년이라고 마무리 슬슬 하라고 하셨는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쓰게 됐다.

 가끔씩 아빠한테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때마다 아빠는 글쓰기는 자신을 돌아볼  있게 하고 생각을 키우게 된다고 했다 글을 기록하지 않는 사람과 기록하는 사람은 매우  차이가 있다고 하셨다난 글쓰기가 무조건 대학을 위해서 쓰는 것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필요성을 알고나서부턴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써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깨우침(?) 있고 나서부터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생활 속에서 글쓰기 주제나 글 쓸거리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그리고 아빠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셨다

 사실 고학년 때부터  쓰는 게 꺼려지거나 두려웠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은 아니지만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조금 가까워진 것은 분명한  같다겉으로 티는  냈지만 글을  쓰는 아빠가 왠지 존경스러웠다. (119)

 

글에서도 썼지만 중학생인 큰 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글쓰기를 매우 어려워했다. 주제는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꼬치꼬치 묻곤 했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적으면 글이 된다는 진리(?)를 터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해 동안 했던 글쓰기가 도움이 된 느낌이다. 또 글쓰기를 하면서 학교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던 게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글쓰기 대회를, 집에서 글쓰기 공부한다는 것만 믿고 무작정 나갔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자신에게는 큰 격려가 된 셈이다.

이렇든 저렇든 큰 딸을 보면 기분 좋게 글쓰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작은 딸은 언니와 상황이 다르다.

 

<글쓰기를 마치고>

드디어 글쓰기를 마쳤다어릴 때는 글을  써서 주위에서 칭찬도 많이 듣고 글쓰기상도 자주 받았는데 요즘에는 글을  보라고 하면  써야할지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겠다지금은 글 쓰는 게 조금 두렵다

아빠는 글을  쓰는 것보다 진실 되게 사실대로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너무 글을  쓰려고만 하는  같다

주변에 관심이 없어지니까 글감도 없고  쓰려고만 하니까 어떻게 써야할 지 생각도 나지 않으니 나한테 글쓰기는 스트레스가 되고  짐이 되었다

이번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몰랐을 것이다글쓰기를   생각하는 것도 귀찮고 글 쓰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아 짜증도 많이 나고 글 쓰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생각 없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나는 아직도 글 쓰는 게 싫고 두렵지만 내가 글쓰기를 두려워한다는  깨닫게 해준 글쓰기가 고맙다. (119)

 

작은 딸은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일기도 잘 쓰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우리 집 글쓰기 교실을 시작했던 지난봄까지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글쓰기를 어려워하더니 막판에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제목도 못 정하고, 무슨 말을 써야할 지도 모르겠다며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작은 딸을 보면 글쓰기를 이렇게 마무리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만으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밝히지 못했을 것 같아서 개학을 앞둔 1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동안 집에서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안 좋았던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좋았던 점에 관해서는 위에서 쓴 글과 크게 다른 내용이 없었다. 안 좋았던 점을 이야기 할 때는 제법 의견이 나왔다. 큰 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본다.

 

 좋았던 점은 일주일 마다  번씩 써야 해서 압박감이 느껴진 거예요.”

. 그래? 그런데 예전에 일기는 날마다 썼잖아 때는  압박이 심하지 않았니?”

일기는 그냥 일상인데 글쓰기는 주제를 꼬집어서 써야 하잖아요주제를 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어요일상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했던 글쓰기도 그냥 일상의 이야기인데어쨌든 주마다  편씩 주제를 꼬집어서 쓰라고 하니까 부담이 있었단 말이구나.”

그렇죠.”

 

주제를 꼬집는다는 말은 쓰고 싶은 대로 끼적이는 일기와 달리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쓴다는 뜻이다그냥 찔러보는 일상이 아니라 선택한 일상이라고 할까이런 글을 일주일마다 규칙성 있게 쓰는 것이 부담을 주었다는 말이다한마디로 일주일마다 좋은글감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작은 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소재를 생각해서 써야 해서 힘들었던  같아요자유롭게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생각  때마다 쓰는 거예요규칙 없이 평소에 자유롭게.”

규칙 없이 쓰면 너무 부담이 없어서 글 자체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딸들은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문제를 더 지적했다.

 

그리고 내가  글을 글쓰기회보에 보냈잖아요누군가  글을 보는  부담되었어요.”

맞아요. 부끄럽기도 하고.”

 

이야기를 정리하면 아빠는 겪은 일 중심으로 편하게 써라’, ‘일주일마다 한 편씩 쓰라고 했지만 딸들은 남들이 읽는 글을 일주일마다 한 편씩 써야 해서 부담이 컸다는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전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 목표는 크지 않았다. 딸들이 너무 글쓰기를 하지 않아서 최소한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쓰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글쓰기를 하면 딸들이 자기 삶에 관심을 가지고 또 엄마, 아빠와 생각을 나눌 수도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문제는 일주일에 한 편이 주는 부담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라면 일기 쓰는 것 보다 부담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딸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못 이겨낼 만한 일은 아니었던지 바쁠 때 한두 주 쉴 때를 빼면 일 년 가까이 꾸준히 써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노력해준 딸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작은 딸은  갈수록 글쓰기를 힘들어하게 됐을까이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2 전만 해도 나라는 글을  쓰고 어진이는 글쓰기를 어려워했잖아근데 지금은 어진이는 글쓰기를  즐거워 하고 오히려 나라가 어려워하는  같아아빠가 보기에 나라는 글쓰기 자체를 혼란스러워 하는  같더라제목을 뭘로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고글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고 말야예전에는 그냥 줄줄 써내려갔잖아읽어보면 진짜 알차고 재미있었거든.”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예전에는 생각  해도 줄줄 나왔거든요떠올리면 글이 나왔죠근데 지금은 (감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됐을까매주 규칙적으로 하니까 부담된다는  이해하겠는데그게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  갈팡질팡하는 원인은 아니지 싶은데. 학교에서 너무 글쓰기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냐? 예를 들면 3학년 때 주마다 했던 생각쟁이가 영향이 있을까?”

 

생각쟁이3학년 때 선생님이 주제를 주고 그 주제에 관한 생각이나 경험을 적는 공책이다. 겪은 일도 쓰지만 주제에 따라서는 경험과 관련 없는 생각도 이끌어내야 해서 작은 딸이 힘들어하곤 했다.

 

글쎄요. 생각쟁이도 매주 해서 힘들기는 했어요.”

그럼 4학년, 5학년 때는 어때? 선생님들이 글쓰기에 관심이 적었잖아.”

일기 검사는 했는데 일기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되고.”

그러니까 이 때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마트폰 사고부터 그런  같아요예전에는 글쓰기가 재미있었거든요그런데   4학년 때부터 일기도  쓰고 책도  읽었거든요머리에 생각이 없어요.”

 

 대화가 있기 전에 작은 딸의 글쓰기에 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사춘기라서 글쓰기에 관심이 적어졌다,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면 될 텐데 시켜서 하니까 안 된다, 학교 담임선생님들이 글쓰기교육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원인을 여러 가지 추측했다. 하지만 딸이 스스로 밝힌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스마트폰 문제는 이전부터 딸들과 갈등이 있었다. 한 번은 집에 있는 전화기를 모두 숨겨놓고 보름 정도 쓰지 못하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때는 전화기 때문에 공부를 너무 안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생각하기 싫게 하고 글도 못 쓰게 하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아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글쓰기를 비롯해서 딸들의 삶을 회복하려면 전화기라는 괴물과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집 만들기와 새로운 계획

<우리 집 글쓰기 교실> 마지막 활동은 문집 만들기다. 대략의 틀은 이렇다. 글은 끼적이다 중단한 글 외에는 모두 넣는다. 내가 정리해서 글쓰기회보에 보낸 글도 함께 넣는다. 편집 작업은 컴퓨터로 한다. 문집은 13권정도 만든다.

골 고르기와 컴퓨터로 입력하기는 지난 겨울방학에 모두 마쳤다. 딸들이 쓴 글은 60여 편 가운데 57편과 내가 정리한 <우리 집 글쓰기 교실 15>가 함께 들어갔다. 글 입력은 온 식구가 나눠서 했는데, 회보에 정리하려고 내가 틈틈이 입력해둔 게 많아서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입력한 글을 모두 모아보니 A4용지로 180쪽 정도 된다. B5 용지로 편집하면 200쪽 남짓 될 듯하다. 그림은 없고 식구들 얼굴이 나온 사진을 넣을 예정이라 쪽수가 조금 늘 수도 있겠다.

교정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단 나누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딸들에게 직접 교정을 시켜보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되는데 문단나누기를 어려워해서 교정이 끝나면 컴퓨터 화면을 보며 함께 해보려고 한다.

문집은 모두 10권을 만들 예정이다. 문집이 나오면 글쓰기회에 두 권 보내고, 가족모임에 여섯 권, 김해글쓰기 모임에 세 권을 들고 가고 나머지는 집에 보관할 것이다. 학교에서 만든 문집만 꽂혀 있는 책장에 우리 집에서 만든 문집이 당당히 꽂혀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우리 집 글쓰기 교실>이 끝나면 이제 무엇을 해볼까. 어떤 것을 고리로 한 자리에 모여 볼까글쓰기를 계속 하는 방안,  달에   정도 네 식구가 모여앉아 토론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방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토론에 무게가 실리는 듯 했는데 엄마도 글쓰기에 동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은 글쓰기를 계속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글쓰기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작은 딸은 조건부 찬성으로 바뀌었다. 작은 딸이 내 건 조건은 글을 회보에 보내지 말고 우리 식구끼리 돌려보자’, ‘일주일마다 한 편 대신 격주나 한 달에 한 편 쓰자이다.

만약 글쓰기를 다시 한다면 글쓰기 교실대신 삶 나누기라는 말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딸 주장처럼 우리 식구끼리 돌려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글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정리될지 모르지만 만약 글쓰기를 이어간다면 우리 집에는 한층 높은 소통문화가 자리 잡을 듯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운영했던 <우리 집 글쓰기 교실>의 막을 여기서 내린다. 큰 딸에게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작은 딸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었고 나에게는 학교에서 하는 글쓰기교육과 집에서 하는 글쓰기교육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하게 해 준 <우리 집 글쓰기 교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지라도 이 시도가 밑거름이 되어 더 좋은 열매로 태어날 거라고 믿는다. (20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