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국기에 대한 맹세

늙은어린왕자 2006. 5. 21. 07:46

 

질기게도 장수한 애국행위, 이젠 잘 가라
―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국기에 대한 맹세’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새해 벽두에 대뜸 위 제목을 표지이야기로 내세웠을 때 사실 조금 당황했다. 앓던 이를 빼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었는데 실제로 빼버리고 나면 허전해지고 뭔가 불안해지는 느낌이랄까. 학교에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접하면서 민주화된 시대 상황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는 바른 자세로 외우도록 하던 문구. 


  교사인 내가 이럴진대 일반인이 이 제목을 봤다면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자신이 보수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펄쩍 뛸 일이 아니었을까. 사학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둔 것을 국가정체성 훼손의 문제로 연결하는 이들의 논리라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주장이 국가를 부정하고 체제를 전복하자는 주장이라고 소리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보수 신문을 대표하는 조선일보에서 인터넷에 오른 누리꾼의 댓글을 자체 집계한 통계(찬성 23.68%, 반대 76.32%)를 친절히 안내하며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나?’ 식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으면 인공기에 대해 맹세를 할거냐’, ‘없애지는 말고 현대에 맞게 어휘를 고쳐서 쓰면 된다’, ‘파시즘체제에서 권력에 충성하도록 하려고 만든 문구니 당장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보면서 전체주의 유령이 떠오른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이 복합되어서다. 맹세문을 처음에 누가 만들었는지 정부조차 모른다는 점, 정치적 목적에 의해 탄생한 맹세문을 지금도 전 국민이 외우고 있고 전국의 학생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읊는다는 점, 만약 거부를 할 경우에는 퇴학 등의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점, 이러한 맹세문에 관하여 논쟁이나 토론이 거의 없다는 점들 때문이다. 유령의 장난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맹세문 거부 논의와 국기 거부는 별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주장이 혹시나 국기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또 누리꾼 가운데 ‘태극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무니 이제 버리자는 것인가’ 하는 의견들이 있어서 태극기의 유래를 찾아보았다. 학창 시절 배운 기억이라면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가면서 배 위에서 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에는 국기로 부를 만한 것이 없어 지난번에 탁지부를 방문한 중국의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는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바탕에 용을 그려야 하며, 본국인 중국은 황색을 사용하나 조선은 중국의 동방에 위치하는 나라이므로 동쪽은 청색을 귀히 여긴다는 뜻에 따라 청색바탕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에 국왕(고종)은 분히 여겨 절대로 중국의 국기를 흉내 내지 않겠다 하여 사각형의 옥색바탕에 태극원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易掛)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고 한다.

(1882년 10월 2일자 시사신보(時事新報) 기사)


  이 기사를 보면 중국의 오만함과 이에 대항한 우리 조정의 자주 의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태극기의 의미가 자랑스럽게 다가올 듯하다. 이렇듯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만들어진 태극기를 군부 정권은 왜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게 하고 오히려 국민들과 멀어지게 했을까.

  

  국기에 대한 맹세가 처음부터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박정희 정권을 향한 충남교육감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새로움을 주었다. 더구나 최초 맹세문을 만든 이가 아직 살아있고 ‘한겨레21’에서 인터뷰에 성공했다는 것이 호기심을 더했다. 그에 의하면 1968년에 충남도 교육감의 지시로 만들어진 맹세문이 군사정부의 지시로 전국으로 확대 시행되면서 일부 문구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1968년 충남도교육위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


  1972년 문교부 국기에 대한 맹세(현재 시행 중)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


  충남도 교육위의 맹세문을 만든 분도 지적했듯이 전체주의 냄새가 잔뜩 배어나는 맹세문으로 둔갑한 것을 민주화시대로 접어든 지금까지 별다른 논의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충남도 교육위의 맹세문이 잘되었다고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그것부터 없었어야 했다.

 

껍데기만 남은 애국행위 그 끈질긴 인연


  1977년 무렵,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구구단과 더불어 외워야 했던 것이 바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었다. 이후 이 맹세문은 학년이 올라가더라도 똑같은 형태로 시험 문제로 출제되었다. 맹세문을 외우면서도 별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비판의식이 생기기 전이기도 했지만 훨씬 분량이 길었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것보다 손쉬웠던 탓일까.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침마다 맞닥뜨려야 했던 공포는 바로 선도부였다. 복장불량이나 이름표 단속 못지않게 중요한 그들의 업무가 바로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맹세문을 소리 나게 외우는가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국기가 눈에 들어왔을 때 바로 경례를 안 하고 몇 발짝 움직이거나 멈칫하면 걸리게 된다. 때문에 교문에 들어설 때 태극기와 맹세문 때문에 늘 긴장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모의 M16 소총을 들고 ‘국기에 대하여 받들어 총’을 하면서 늘 들었던 맹세문. 하지만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행사에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가 따라다녔기 때문에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러다 첫 발령을 받은 뒤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학기 초라 학급회의를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구령을 외치고 잠시 멈칫 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국기에 대한 맹세 안 해요?”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에~ 선생님이 국기에 대한 맹세도 모른다.”

  그 때 무능하게 보였던 내 모습은 지금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초, 중, 고를 거치며 머릿속에 확실한 유령으로 자리 잡은 맹세문이지만 대학을 거치며 공백 기간이 생긴 탓이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유령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전교조회 시간이면 어느 새 감시자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서더라도 팔을 가슴에 올리지 않거나, 한 손으로 옆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들을 ‘적발’하고 있는 내 모습이란. 벌을 줄 때도 있고, 애국이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회 시간의 잘못을 도덕 시간으로 이어가며 나무라기도 한다. 어릴 적에 감시당하며 몸에 익힌 애국행위는 어느 새 유령이 되어 나를 감시하고 아이들을 감시하게 만든다.

 

애국을 강요말라

 

  국기를 보며 국가의 번영을 바라는데 뭐가 나쁘냐고 질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가 아니라 권력이라면 수긍할 수 있을까. 영화 ‘실미도’에서 중앙정보부장이 684 부대장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권력을 가진 자가 명령하는 것이 곧 국가의 명령이다.”


  권력=국가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곧 권력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지금 그 맹세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나에게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게 우습지 않나. 만약 맹세문을 외우는 주체가 군인들이라면 경우가 다를 것이다. 그들이 섬겨야 할 대상은 국가 즉 국민들이므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도 아깝지 않은 맹세문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캐나다에 사는 교포가 인터넷에 올린 내용이 인상 깊다.


  아이들의 옷에도 그렇지만 4-50대 남성들의 잠바에 캐나다 국기나 캐나다라고 작게 쓰인 것을 자주 보는데… 이들에겐 (국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볍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 전에 제 아이 학교의 음악회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지미 핸드릭스의 스타일로 학생이 국가를 연주하는데 사람들이 기립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상당히 자유로움 속에서 실제의 애국이 깃들었군. 이랬습니다. 그냥 국가가 연주되는 자리에서의 직립자세 정도가 현대에 맞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애국은 맹세에 따라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외교적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달린 것이겠지요.

 

  지난 해 8월 15일, 광복 60주년을 맞아 나라에서는 큰 행사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날 아파트에 게양된 국기 수를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사는 동에는 90가구가 있는데 당일 게양된 국기의 숫자는 채 20가구가 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국기를 바라보고 나라에 충성한다는 맹세를 했지만 강요된 행위의 결과는 참담하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거부조차도 인정하는 사회야 말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최일선의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이 교포의 덧붙임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애국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된 관행, 작은 변화부터


  사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환경심사를 명목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국기가 비뚤어졌느니 먼지가 쌓였느니 하면서 쓴 소리 하는 관리자는 별로 없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감시가 줄거나 없어진 반면 오히려 애국의 형식은 제도화되어 현장에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 교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는 학급회의에서 굳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맹세문을 외우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일까. 지난 해 처음 맞은 회의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아이들 특유의 끊어 읽기 방식으로 맹세문을 외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애국가 제창까지 학급회의가 무슨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회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급회의 시간이라면 학급이나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논의나 토론을 하는 시간인데도 시작은 국가적인 방식으로 한다. 우선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서 부터라고 본다. 국민의례에서 시작하여 교가제창으로 끝나는 학급회의 구조를 회의규칙을 지키는 선서에서 시작하여 반가제창(반가가 없을 경우 교가로)으로 끝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그것이다.


  전교조회나 학교행사에서 진행되는 맹세문 낭독을 없애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법으로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기 사용에 관한 지침이 없어지기 전에는 관료조직의 특성으로 봐서 관행을 바꾸기 쉽지 않다. 따라서 시대에 맞게 지침을 개정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여론화시켜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자신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로고는 있다. 그것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 조직이나 단체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기를 향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형식의 강요가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이다.


  “아빠, 우리나라 국기가 다른 나라 국기 보다 제일 멋지지요?”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큰 아이에게 국기는 아직 애국심이나 애국형식과는 상관없는 그저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국기가 신성시되거나 형식이 지나쳐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애국심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손에 쥘 수 있는 그저 하나의 좋은 이미지 노릇을 하는 깃발이 되면 좋겠다. 아울러 국기를 대하는 다양한 시각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나와 다른 의견은 토론을 통해서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진정한 민주사회가 되면 좋겠다.

 

<월간우리교육> 2006년 2월호에 실음

'삶을가꾸는글쓰기 > 교육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시간에 뿌린 사탕  (0) 2007.02.27
  (0) 2006.09.19
배움의 정도  (0) 2006.05.21
약탈(!)당한 바나나  (0) 2006.05.21
교원평가 사태를 바라보며  (0) 200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