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약탈(!)당한 바나나

늙은어린왕자 2006. 5. 21. 07:37

 

약탈(?)당한 바나나

 

  퇴근하려는데 6학년 여자 아이들 4명이 운동장에 놀다가 뛰어왔다.

  "선생님, 좀 태워주세요."

  아이들은 다짜고짜로 자기들 집으로 가자며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우리 애기들 데리러 가야된다. 어서 내려라."

  하지만 아이들은 문을 닫고 안에서 히히덕거렸다.

  잠시 밖에서 기다리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운전대 앞에 놓아둔 바나나가 껍질만 남아있는게 아닌가. 점심 때 급식으로 나온 걸 우리 애기들 주려고 안 먹고 넣어둔 건데 그걸 먹어버린거다. 화가 치밀었다.

  "야, 이걸 먹으면 어떻게 해. 너거들 주려고 놓아둔 줄 아나? 어서 내려!"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치자 히히덕거리던 아이들이 내 성난 눈빛을 보고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그 바나나 우리 집 애기들 주려고 놓아둔 건데 왜 너희들이 허락도 없이 먹노!"

  거듭 화를 내자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일 벌로 바나나 3개 사왓!"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입을 삐쭉거리며 후문 쪽으로 뛰어갔다.

  '수업 시간에 말도 잘 안 듣는 것들이... 쯧.'

  사실 바나나 하나 먹었다고 심하게 야단칠 일은 아니지만, 집으로 가져가면 새끼제비처럼 받아먹을 우리 애기들 생각을 하니 더욱 화가났다.

  차를 몰고 나오는데 후문에서 아이들이 내려왔다. 아이들이 선생님 간다며 손짓을 했지만 못본 척하고 내달렸다.

  오면서 아이들에게 좀 심하게 대했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애기들 생각을 하니 다시 화가 났다. 정말 웬수덩어리가 따로 없다.

  그런데 내일 그 애들이 바나나를 사 올까. 만약 사 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은 된다. (0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