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책을읽고

'딥스'를 읽고

늙은어린왕자 2007. 2. 27. 09:24

'딥스'를 읽고

 

이 책이 지금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도서관마다 대출중이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어렵게 구한 책은 김해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으로 분류되어 창고에 넣어놓은 것인데 정성호가 옮겼고, 보성출판사에서 1983년도에 펴낸 ‘딥스’라는 책이다.

대학 3학년 때(1990년 경)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이수하면서 교수님이 지정해준 책이 ‘딥스’였다. 당시 샘터사에서 출판한 문고판의 책을 사서 읽고 과 친구들과 토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때는 솔직히 책의 내용이 저에겐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딥스 같은 아이를 대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내가 이런 아이와 맞닥뜨릴 것 같지도 않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가 있는데, 과 동기 중에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를 보고 ‘자아를 잃은 아이’라며 ‘딥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그런 장애(?)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실연이었다. 사랑했던 여자 선배에게 노래를 들려주려고 날마다 기타를 배우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선배로부터 다른 남자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고 통보를 받고 난 뒤 그는 딥스처럼 변했던 것이다. 그 증상이 졸업 후 다른 사람과 사귀기 전까지 나타났는데, 지금도 만나면 우리는 그를 ‘딥스야’하고 부르곤 한다.

책에서는 딥스의 장애 원인을 가정의 태내에서부터 시작된 잘못된 가정의 양육방식에 두고 있다. 어머니가 임신 기간 중 딥스를 원치 않았고 피임의 실수로 출산하게 되었고, 딥스는 세상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세상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딥스가 자신들이 쌓아온 훌륭한 사회적 지위를 망가뜨린다는 생각에 마음에 사랑을 갖지 못한 채로 딥스를 양육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부모의 생각이나 태도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문제는 어린이에게 잘못된 영향력이 미칠 때이다. 그 결과로 아이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든지 공격적이 된다든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면 일정 정도 사회적 관여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그런 문제를 인식한 부모를 만난다면 교사나 치료사는 액설린 선생님의 경우처럼 아이의 상황이나 상태에 맞는 적절한 진단과 치료 또는 (장애 정도가 심할 경우) 재활의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런 아이를 만난다면 나 자신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게 될까. 아마 절망적일 것이다. 아이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을 절제해가며 아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도록 돕는 과정은 감정에 치우친 사랑과 처벌에 익숙한 한국의 풍토, 그런 풍토에서 자란 내가 성공적으로 풀어가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게다가 개인이든 단체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성과 위주의 행정적인 조치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학교 풍토도 문제가 된다. 기다리며 인내하고 멀리 내다보며 일을 풀어가는 자세를 나 자신부터 갖추어야 하겠고, 이런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

딥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문제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조금의 성의를 보여준다면 모든 아이는 그 자신이 깨우쳐 나가며 자신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어린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어른들도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부터. 그래서 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어린이들을 치료한다는 자세보다는, 불완전한 나지만 그들과 나눌 수 있는 무엇을 찾는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6. 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