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도서관에 가서 참고 도서 두 권을 빌렸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과 에너퀸들런이 쓰고 임옥희가 옮긴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가 그것이다.
‘소설처럼’이라는 책은 언젠가 지인이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인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읽지 못했으나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정독해보니 나 역시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서 우선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권했다.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라는 책은 읽고 있는 중이지만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데다 어설픈 번역투의 문장들이 거슬려서 그만 읽을까 생각 중이다. 따라서 독서의 본질에 대한 의견은 거의 ‘소설처럼’을 읽다가 했던 생각이 기준이 되었다.
‘소설처럼’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집 두 딸아이가 떠올랐다. 큰 아이는 7살, 작은 아이는 이제 5살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 들려주기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3-4살 때에는 주로 내가 아는 이야기나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랑이나 토끼가 나오는 이야기들은 전래동화에서 따 온 것들이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우리 아파트에 사는 고양이를 보며 상상했던 이야기나 놀이터를 배경으로 벌어질 만한 사건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화책을 사거나 빌리면 같이 읽곤 했다.
그런데 큰 아이가 5살 때부터 글을 읽게 된 후 난 좀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글을 읽는다는 것이 신기한 나머지 내 역할을 잊어버리고 책만 아이에게 안기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또 내가 지어내던 이야기의 소재가 고갈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내한테 이야기 들려주기를 미루고 있던 중이었다. ‘소설처럼’은 이런 나의 행동이 아이가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첫 발걸음이라는 것을 경고해주었다.
‘소설처럼’을 읽으며 떠올린 다른 대상은 바로 우리 반 아이들이다. ‘읽기’ 시간에(다른 시간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교과서의 텍스트를 읽는다. 그리고 지도서에 제시된 대로 아이들과 텍스트를 무 자르듯 단락이나 내용별로 분리시켜서 중심 내용을 찾는다든지 요약하기, 연결 관계를 알아보는 공부를 한다. 그리고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텍스트의 끝부분에 나와 있는 문제를 푼다. 시를 읽어도 패턴은 비슷하다. 시어가 비유하는 것을 찾거나 표현이 잘된 부분을 찾기도 한다. 끝에 있는 문제도 꼭 풀고 넘어간다. 적어도 교과서의 내용은 다루어주어야 교사로서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일제히 치루는 ‘평가’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그것이 재미없는 과정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바꿀 용기가 부족하고, 또 바꾸게 된다면 어느 선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교과서의 패턴을 따라 온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읽기 공부와 독서는 다른 것이라고 선을 그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읽기 공부가 재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패턴에 길들여져 그냥 순응하고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막연한 의사에 편승하여 왔다고 본다.
‘소설처럼’은 이런 나의 소심함에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읽기’ 공부는 말 그대로 ‘읽기’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우선 텍스트 읽기는 계속하면서(앞서 말한 ‘책임’의 무게감 때문) 텍스트와 관련된 읽기자료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학교도서관, 김해도서관 정도가 기본이 되겠고, 우리 집에 있는 자료들 중에도 꽤 쓸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당 읽기 시수가 세 시간인데 그 중 한 시간을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으로 쓸까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하는 놀이들은 다양하다. 오목을 즐기는 그룹, 공깃돌 놀이를 즐기는 그룹, 선생님 컴퓨터에 와서 대중가요 듣기를 즐기는 그룹, 두런두런 앉아서 이야기를 즐기는 그룹, 10분이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밖에 나가서 공을 차는 그룹, 카드놀이를 즐기는 그룹, ……. 하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한다. 쉬는 시간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 시간에는 제발 책 좀 읽으며 수업에 들어가자고 한 달 동안 강조했지만 우리 반의 아침 시간과 쉬는 시간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놀이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재미있으니까 시키지 않아도 하는 놀이처럼 독서가 그들 삶에서 또 다른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올 해 학급경영을 통하여 신경 써야 할 내 역할이지 않나 싶다.
책을 다 읽고 혹시나 싶어서 네이버에서 ‘독서의 본질’을 검색해보았다. 여러 가지 문서들 중 ‘독서의 본질과 지도 원리’라는 것이 있었는데, ‘소설처럼’이 우려했던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몇 가지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제재 자체보다는 방법을 중요시하는 독서 지도
활동 자체보다는 학습이 중시되는 독서 지도
독서 후 주의사항 - 투자와 효과 검토
사고력을 키워 주는 독서 - 질문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꾸 생각해 보도록 유도
이 가운데 한두 가지는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 ‘소설처럼’을 읽고 이런 문구들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20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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