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어느 분야든지 이중성의 요소가 강한 것 같다. 교육계의 경우를 보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들과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는 교사들은 대개 승진하지 못하고 평생 평교사로 지내지만, 뭔가 그럴듯한 연구실적을 만들어서 점수를 받고 남들이 보는 데서 수업을 실시하여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승진하여 교감, 교장이나 장학사, 장학관이 되어서 학교를 지배한다.
승진할 사람은 승진하고 아이들 가르치고 싶은 사람은 계속 아이들 가르쳐도 무방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걸 사람의 취향쯤으로 여기고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문제가 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승진을 안 하고 가르치는 보람으로 사는 분들을 무능한 존재로 몰아가는 풍토다. 다시 말하면 점수를 얻어서 승진하는 분들은 자신의 능력이 우수하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서 그러지 못하는 분들을 무능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능력의 기준이 무엇인가? 아이들을 이해하고 감동적인 수업을 선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심일까, 아니면 자기관리를 철저히 잘 하는 것이 기준일까. 아니면 이 둘을 다 합친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또 하나의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학교를 지배하는 분들의 철학과 사고대로 학교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진정성 즉 어린이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교육을 행하는 쪽이라면 문제가 될 수 없겠으나 대개 학력신장 등 계량적인 면에서 더 나은 통계수치만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문제다.
사교육시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지식형 독서교육의 행태는 현재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분들의 사고로 보면 전혀 이상한 것이 되지 않는다. 학교 바깥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볼 때 학교가 왜 저러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겠지만 학교 내부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이해된다. 현재 학교를 지배하는 이들은 등산 그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지도를 읽는 것을 즐기는 부류가 주류라고 보면 된다. 계측 가능한 실적을 통하여 성장한 만큼 뼛속 깊이 그런 사고가 박혀 있어서 내용 보다는 실적을 강조하고 참여하기보다는 관리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등산 그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를 개척해가는 입장이지만 학교도서관이 바로 서기를 바라고 독서가 실적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교육에서 진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흐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공공도서관에서 올바른 독서, 독서교육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인력과 예산이 많이 부족하겠지만 공공도서관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아울러 학교는 당장 실적 위주의 독서교육을 지양하고 어린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장서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0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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