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읽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 발표일 : 2012년 3월 25일
□ 장 소 : 민들레 해보기학교
□ 발표자 : 이정호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버리지 못한 내 별명 하나는 바로 ‘어린왕자’이다. 대략 20년 쯤 썼으니 나한테는 최장수 별명인 셈이다.
대학 시절 어느 시점부터 이 별명을 썼는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린왕자』가 유명한 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별명을 붙인 것만은 확실하다. 귀동냥으로 들은 대략의 줄거리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미루어 짐작하여 내 성향과 연결시키면서 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한 일은 스스로 ‘어린왕자’라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큰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집요한 세뇌작전(?)이 통했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밀양 촌구석에서 내려와 세상일에 휩쓸리지 않고 순진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어린왕자의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스스로 어린왕자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일은 발령 후 아이들에게도 이어졌다. 학년 초에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단골메뉴처럼 이름 옆에 어린왕자라고 써놓곤 했다. 사소한 이야기를 할 때도 어린왕자를 들먹이고, 때로는 내 주제곡이라며 ‘꽃과 어린왕자’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이어갔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심각한 왕자 병에 걸렸다며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다가도 어느 정도 나를 알고 나면 ‘어린왕자 샘’이라고 순순히 부르곤 했다. 덕분에 졸업한 지 10년 만에 만나서도 ‘어린왕자 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가 있을 정도다.
물론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이 전통은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받아들이기는커녕 ‘늙은 왕자’라고 되받아치는 아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어린왕자’ 행세를 한다. 앞으로도 이 전통은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별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생활로 꾸준히 이어온 건 ‘어린왕자’라는 별명과 연관이 크지 싶다. 내가 ‘어린왕자’ 별명을 처음 썼을 때는 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어린왕자’라고 내세우고 다니면서 별이 마음에 끌렸다. ‘어린왕자’ 하면 별이 떠오르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어린왕자’라는 별명에 이끌려 별 세상으로 들어갔다.
별을 좋아하게 되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순순히 나를 ‘어린왕자’로 받아들였다. 별을 좋아하지 않았을 때는 ‘어린왕자’라고 내세우는 게 뭔가 억지스럽고 어정쩡한 구석이 있었지만 나중에 별을 좋아하게 되면서 별명은 강한 힘을 갖게 됐다.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나를 ‘어린왕자’로 받아들여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시절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에는 두 어린왕자가 있었다. 한 명은 나였고 다른 한 명은 마산 출신 동기였다. 별명은 그 친구가 먼저 붙였다. 꼼꼼한 성격으로 봐서 그는 책을 감명 깊게 읽고 별명을 붙인 것 같았다. 나는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어린왕자라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세뇌작전 덕분인지 후발주자였는데도 인지도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가 지금도 이 별명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부산에 있고 나는 경남에 있어서 잘 만나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바람에 묻어오는 소문으로는 아직 장가도 가지 않고 늘 아이들 곁을 지키며 아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를 열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는 여전히 어린왕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역시 그 못지않게 어린왕자 이미지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늘 ‘어린왕자’로 살아왔지만 정작 『어린왕자』를 가까이 만나게 된 건 개편 전 6학년 교과서에 일부 내용이 실리면서부터다. 교과서에는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비행사를 만나 양을 그려달라는 부분이 나왔다. 그리고 ‘어린왕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훑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사실 ‘늙은왕자’라는 말도 들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 읽기는 매우 쉬웠다. 다 읽는데 한 시간 남짓 걸렸을까? 그리 길지 않은 동화책이라는 생각도 들고, 글자 수가 적고 아름다운 삽화가 많아서 그림책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또 의미 있는 짧은 문장을 보면서는 시집으로 느끼기도 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길게 쓴 편지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너무 빨리 읽은 탓에 다시 훑어볼 때는 밑줄 친 부분과 삽화를 감상하며 보았다. 또 책이(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뜻도 살펴보았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너무 유명해서 수십, 수백 번은 들어보았음직한 이 세 문장만으로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이 갔다. 겉으로는 ‘어린왕자’ 행세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바늘에 찔리듯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나 같은 어른들이 반성하라고,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스스로 정한 굴레에서 빠져나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 곳곳에 늘려 있는 유연한 생각과 상상은 화석처럼 굳어버린 어릴 적 순수한 감성을 자극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 그림
양을 담고 있는 상자 네모난 상자
활화산 두 개, 휴화산 한 개, 꽃 한 송이가 있는 아주 작은 별
별을 뒤덮은 바오밥나무 세 그루
이 가운데 ‘양을 담고 있는 네모난 상자’는 내 뻣뻣한 감성을 가장 많이 뒤흔들어 놓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은 당연히 그러한데도 ‘어른’인 작가가 그런 상상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위에 든 예들뿐만 아니라 어린왕자가 해질녘 황혼을 바라보는 방법, ‘중요한 일’에 관한 논쟁, 모든 생물들과 이야기 나누는 어린왕자, 53분이 주어진다면 샘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는 어린왕자, …‥. 사실 이 책 전체가 하나의 동심덩어리였다.
어른으로서 뜨끔한 부분도 있었다. 보아뱀 그림을 본 어른들의 충고에 화자가 여섯 살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하는 장면에서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똑같이 반복되겠지. 나에게도 휴식 시간이 없을 테고...’ 이 부분에서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학력향상을 부르짖는 학교와 교육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저마다 급행 열차에 몸을 싣지만 정작 자기들이 무엇을 찾으러 가는지는 모르고 있어. 그래서 초조해 하며 제 자리를 맴돌고 있기만 해.’ 이건 내 모습이자 주변 사람들 대부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무엇을 보며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지 다소 엉뚱한 분석을 해보았다. 피비린내 나는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비행기 조종사로 세상을 누비며 해보았을 생각들이 이 이야기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별을 좋아하다 보니 군데군데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우주에 있는 별 5억 개, 어른들이 사는 소행성 같은 천문지식들이다.
작가가 살았던 당대에는 우주의 별을 5억 정도로 생각했고, 목성과 화성 사이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소행성의 발견이 큰 뉴스가 되었을 무렵이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지만 우주와 천문에 관심이 많았을 작가는 이런 지식들을 눈여겨보았을 테고 그것을 이야기 속에 녹여냈을 것이다.
요즘 지식으로는 우주의 별이 천억 개×천억 개이고, 소행성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발견되었다. 만약 작가가 현대에 살며 이야기를 짓는다면 되먹지 못한 어른들을 수없이 만들어도 될 만큼 소행성 수는 많아진 셈이다. 하지만 별이 5억 개든 천억 개든 무슨 상관이랴. 이런 지식은 이야기를 만드는 소품일 뿐, 사실과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으로 보는 눈을 길러라 또는 잃지 말라. 이것이 이 책이 끝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아닐까 싶다. 별빛 아래 밤새 걸어서 찾아내 도르레의 노랫소리에 맞춰 내 두 팔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물을 한 모금 마실 때의 기쁨을 아는 삶, 이렇게 주변의 사물들과 서로 길들여지고 관계 맺는 삶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이 책은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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