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4월 9일 - 재미없는 도덕 공부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4:52

 4월 9일

재미없는 도덕 공부


  체육수업을 하고 들어와서일까. 도덕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책 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 더워서 공부 못하겠어요."

  "체육 해서 피곤해요. 만화 보여주세요."

  몇몇 아이들은 이렇게 푸념까지 했다.

  고민스러웠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다가 교실에 들어오면 공부하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수업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공부 하지 말고 종이접기를 하거나 만화영화를 볼까 생각하다가 도덕책을 펴고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진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자료를 살펴보니 마침 오늘 공부와 관련되는 옛이야기 동영상이 있었다. 책 펴라고 하면 또 푸념할 것 같아서 먼저 동영상을 보여주었더니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잡혔다. 공부하기 싫다고 아우성치던 아이들 눈길이 모두 화면으로 모였다.

  동영상을 보고 자연스럽게 도덕 공부로 넘어갔다. 그러니 아무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위기를 잘 넘긴 셈이었다. 오늘 미루면 언젠가는 메워야 하니까 말이다.

  바쁘게 읽고 쓰며 진도는 나갔지만 왠지 기분이 나지 않았다. 공부가 끝날 즈음 넌지시 물어보았다.

  "도덕 공부 재미있습니까?"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미없어요."

  내 마음 속 대답과 똑같았다. 뻔한 이야기에다 학습지 풀듯 끊임없이 무엇을 쓰도록 되어 있는 교과서를 바라보면 마치 인간훈련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책으로 공부하려니 진행하는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이 든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알림장을 쓰려는데 갑자기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도덕 못 가르친다고 나 물러가란 말이지?"

  내가 눈물을 닦는 척 하며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이들이 말렸다.

  "아니, 선생님 말고 도덕책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주었더니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도덕책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좀 더 연구해서 재미있는 수업을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