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5월 25일 - 아침에 하는 글쓰기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5:27

5월 25일

아침에 하는 글쓰기


  아침 시간에 아이들이 내 놓은 생각주머니 공책을 읽어보니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태현이가 쓴 글이었다.


  5월 17일 월요일 바람이 불지 않고 구름이 옅게 낌

  어제 컴퓨터에서 '네모의 꿈'이란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에서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라고 했다.

  오늘 학교에 오니 네모난 학교에다 네모난 공책에 네모난 칠판에 거의 다 네모였다. 이 노래가 세상을 보며 부른 노래인 것 같다. (김태현)


  태현이는 남자치고는 감성이 풍부하다. 쓴 글을 읽어보면 보통 남자 아이들과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읽는 맛이 있다.

  아이들한테 공책을 나눠주기 전에 태현이 글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글 쓰는 방법에 관해 잠시 이야기했다. 

  "태현이 글 참 좋지요? 태현이처럼 보았거나 겪었던 일을 떠올려보고 느낌이나 생각이 또렷했던 걸 잡아서 쓰도록 하세요."

  길게 이야기하면 잔소리가 되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태현이 글이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공책을 나눠주었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작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빨리 쓰도록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좋은 글을 쓰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테 시간이 없다고 빨리 쓰자고 했으니 말이다.

  10분 쯤 지나자 다 쓴 아이들이 잇따라 나왔다. 몇 편 읽어보았다.


  5월 25일 화요일 햇빛이 안 보인다.

  배추흰나비가 작았는데 길쭉하게 됐다. 너무 놀랐다. 그런데 하루를 지났는데 번데기가 되어있었다. 너무 놀랍고 기쁘다. 어서 배추흰나비가 되면 좋겠다. (김수지)


  5월 25일 화요일 춥다가 점점 더워진다.

  아침에 와서 배추흰나비 재배상자 안을 보니까 잎이 원래 많았는데 애벌레가 갉아먹어서 잎 중간이 뻥 뚫려 있었다.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으면 어떻게 하지? (강민서)


  수지와 민서는 배추흰나비 재배상자 본 것을 썼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재배상자를 관심있게 보았던 모양이다. 둘 다 본 것을 잘 잡아 썼다.


  5월 25일 화요일 조금은 쌀쌀하다.

  반에 들어오니 여자 아이들이 살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자리에서 그냥 손으로 살구 연습을 했다. 나도 이제 가연이처럼 잘 하려고 다짐을 했다. 이젠 여자 애들이 살구를 할 때 같이 하자고 해야지. (문예진)


  예진이 글을 보니 살구를 더 잘 하고 싶은 예진이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실력을 키우려고 손으로 살구 연습을 하는 예진이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10분이었다. 수업 때문에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어서 모두 공책을 내라고 했다. 아이들이 공책을 들고 나올 무렵 밖에서 지방선거 유세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트로트 곡이었다. 아이들이 웃었다. 구완이가 공책을 내며

  “선생님, 지방선거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어요. 집에 있어도 시끄러워서 공부도 제대로 못해요.”

하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구완이 생각주머니를 보니 아침에 했던 딱지 이야기를 써놓았다. 이왕이면 방금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구완아, 딱지 이야기도 좋은데 방금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쓰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구완이는 좋다며 한 편 더 쓰겠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들도 덩달아 나섰다. 지방선거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대여섯 명이 냈던 공책을 다시 가져갔다. 시간은 없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어떤 글이 나올 지 궁금했다.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 6월 2일 날 학교 와요?”

하고 물었다. 

  “지방선거 날 학교 안 온다.”
하고 답했더니 모두들

  “앗싸, 지방 선거도 좋은 점이 있네.”

하며 글을 썼다.

  잠시 뒤에 다 썼다며 가져온 글을 살펴보았다.


 5월 25일 화요일 조금 맑아졌다.

  아침에 학교에 오는데 지방선거 때문에 귀가 터질 것 같았다. 학교에서 생각주머니를 쓰는데 지방선거 노래가 나와서 아이들이 웃었다.

  지방선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하는 날은 좋은 날이다.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기 때문이다. 빨리 6월 2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권구완)


  5월 25일 화요일 바람이 쌩쌩

  요즘 지방선거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 짜증난다. 나는 9번 송윤한 아저씨를 뽑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들은 못 한다고 했다.

  송윤한 아저씨를 뽑으면 김해가 더 좋은 곳이 될 것 같아 뽑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선거를 못 한다고 했다. 나쁘다. (남경민)


  수업 시간은 조금 희생했지만 구완이 덕분에 놓칠 뻔한 글을 몇 편 잡은 셈이다. 오늘 글쓰기 경험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