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선생님의 건망증
출근해서 교실에 들어오는데 '아차' 싶었다. 5월 생일잔치에 쓰려고 사 둔 초코파이를 안 가져온 것이다. 잊고 갈까봐 출입문 앞에 눈에 띄도록 두었는데도 그냥 와 버렸다. 샀을 때 바로 차에 넣어두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쉬웠다.
초코파이 때문에 집에 다시 갔다 오기도 그렇고, 학교 주변에는 잠깐 다녀올 만한 거리에 상점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먼저 교무실, 행정실, 유치원에 가서 빵이나 초코파이를 찾았지만 없었다. 급식소에는 얼려놓은 떡이 있었지만 그걸 녹여서 초를 꽂으려면 두 시간은 걸리겠다 싶어서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전체 교실에 메시지를 보내 초 꽂을 만한 음식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보내달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옆 반에서 초코파이만한 크림빵 두 개를 갖다 주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초라도 꽂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종이상자 위에 빵 두개를 올려놓고 초를 각각 두 개씩 꽂으니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여태껏 보아온 케이크 중에서 가장 없어보였다. 생일잔치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혀를 찼다.
"건망증이 그렇게 심하세요?"
"오늘 생일잔치 하는 애들 불쌍하다."
생일 맞은 아이들도 왜 하필 자기가 할 때 잊어버렸냐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우리한테는 늘 잊어먹지 말고 가져올 거 가져오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왜 잊어먹어요?"
미경이는 굉장히 뼈아픈 말까지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야단맞아도 어쩔 수 없었다.
내 건망증 때문에 케이크는 볼 품 없었지만 생일잔치는 그럭저럭 잘 진행됐다. 더구나 찬기 어머니께서 맛있는 떡을 보내주셔서 맛있게 나눠먹으며 생일파티를 즐겼다.
"얘들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내가 아이스크림 한 개씩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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