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6월 18일 - 두 싸움

늙은어린왕자 2010. 6. 21. 01:12

6월 18일

두 싸움

 

  4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싸움이 두 건 일어났다. 여학생과 남학생 각각 한 건씩이다. 여학생은 진하와 민서가, 남학생은 찬기와 성진이가 싸웠다. 찬기와 성진이는 서로 주먹이 오가는 정도로 그쳤지만 진하와 민서는 발길질에 실내화가 날아다녔다. 도덕 수업 시간이었지만 싸움 정리가 도덕교과서 보다 더 실감나는 수업 교재라고 여기고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먼저 진하와 민서를 불렀다. 민서는 분해서 울고 진하는 민서가 던진 실내화에 맞았다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이들 말로는 민서가 던진 실내화에 진하가 맞았다고 했는데 표정으로 봐선 오히려 민서가 맞은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안 물어봐도 훤히 보였다. 첫째 시간에 민서가 만화책을 보다가 나한테 빼앗겼는데 그 책은 진하한테 빌린 것이었다. 민서가 울상을 지었지만 공부 시간에 만화책을 보다가 걸리면 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책을 전산실 캐비넷에 넣어버렸다. 그것 때문에 둘이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민서한테 물었다.

  “민서야, 왜 실내화 던졌노?”

  민서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화책 빼앗겼다고 진하가 자꾸 책값 내놓으라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찼어요.”

  이번에는 진하한테 물었다.

  “진하야, 민서한테 만화책값 달라고 했나?”

  “예.”

  “안 주겠다고 해서 때렸나?”

  “아뇨. 민서가 먼저 다리를 찼어요.”

  진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한 마디씩 들어보니 진하가 민서한테 책값을 달라고 하며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서로 상대가 먼저 발길질을 했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민서가 잘못한 점 가운데 공부시간에 만화책을 본 것은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면 되고, 책을 빼앗긴 점은 진하한테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또 실내화를 던져 피해를 입힌 것도 사과를 하면 풀릴 문제였다. 진하도 민서한테 다짜고짜로 책값을 내놓으라고 하며 궁지로 몰아넣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문제였다.

  발로 차고 실내화를 던지는 싸움만 없었으면 모두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이미 감정에 골이 깊이 생겼기 때문에 이것부터 풀어야 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쳤느냐다. 이것만 풀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증인을 찾았더니 은서가 옆에서 자세히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민서는 은서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봤다고 했다. 은서보고 어디 있었는지 가보라고 했더니 싸운 자리에서 두 칸 옆자리였다.

  “민서야, 은서가 저기 있었다면 다 봤을 것 같은데 어째서 못 봤다고 하노?”

  내가 다그치자 민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은서는 처음부터 못 봤단 말이에요. 현수만 처음부터 봤단 말이에요.”

  그러자 은서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이 자기들도 처음부터 보았다고 민서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우선 은서 말을 들어보자고 했다. 은서가 쇼파 끝자리에 앉으며 설명했다.

  “제가 여기 앉아 있는데요. 진하하고 민서하고 다투다가 민서가 먼저 진하 다리를 찼어요. 그러니까 진하도 찼어요. 그러다가 민서가 실내화를 던져서 진하 배에 맞았어요. 혜민이도 맞았고요.”

  은서와 함께 있었다는 수지, 경민이 그리고 몇몇 아이들도 같은 의견을 말했다. 아이들 의견이 대부분 진하 쪽으로 쏠렸다.

  “나는 배만 찼다. 다리는 찬 적 없다.”

  민서는 억울하다는 다시 울상을 지었다. 이 말은 민서가 먼저 배를 차며 싸움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싸울 때 다리는 안 찼기 때문에 은서 말이 거짓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민서가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현수 말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자, 그럼 현수 말을 들어보자. 민서는 현수가 처음부터 봤다고 하니까 말야.”

  현수가 일어서서 말했다.

  “제가 보니까요. 진하가 먼저 민서보고 팔 들고 때리려고 했어요. 그러자 민서도 팔을 들어 때리려고 했고요.”

  현수는 앞서 말했던 아이들과 다른 주장을 했다.

  “그리고요, 진하가 주먹 들고 때리려고 하면서 먼저 제 다리에 발 걸었어요.”

  마음이 좀 가라앉았는지 민서가 새로운 사실을 덧붙였다. 진하한테 확인해보았다.

  “진하야, 니가 먼저 주먹 들고 발 걸었나?”

  진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가 솔직히 인정해주니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사실 서로 치며 싸우면 누가 먼저 때렸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 때렸다면 둘 다 잘못이 있다. 그렇다고 똑같이 사과하라고 하면 억지로 사과는 하겠지만 둘 다 불만이 남는다. 내가 먼저 맞았는데 왜 같이 사과를 해야 하나? 또는 내가 더 많이 맞았는데 왜 같이 사과해야 하나? 이런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아이들 싸움을 풀 때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주면 쉽게 풀리는 수가 많다. 진하는 발을 먼저 걸었다는 점을, 민서는 화를 못 참고 신발을 던졌다는 점을 인정하면 둘 모두 사과를 받는 셈이 된다. 사과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진하와 민서에게 다리 걸고, 실내화 던진 일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둘은 그러겠다고 했다. 이제 책 문제가 남았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대여섯 명이 비슷한 답을 내놨다.

  “민서가 진하한테 책값을 물고 사과하면 될 것 같아요.”

  규리에 이어 찬기, 수지, 수인이도 같은 의견이었다. 민서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민서 마음에는 책값은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처벌은 충분히 된 셈이다. 이제 내가 용서하는 일이 남았다.

  “원래는 공부시간에 읽다가 빼앗긴 만화책은 폐휴지로 버리기로 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용서하고 다시 돌려줄까 싶다. 누구한테 주어야 할까? 그리고 책을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될까?”

  처음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진하한테 주어야 한다는 아이도 있고 민서한테 주어야 한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민서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수지가 먼저 답했다.

  “민서가 만화책을 진하한테 주며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요.”

  수인이가 보충해서 말했다.

  “민서가 만화책 줄 때 말하기 힘들면 쪽지에 써서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역시 문제도 답도 모두 아이들 속에 있었다. 공부시간에는 보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만화책을 민서한테 주었다. 그리고 진하한테 사과할 수 있겠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싸움이 모두 해결됐다.

 

  찬기와 성진이 싸움은 아주 간단했다. 둘이 딱지를 쳤는데 성진이가 찬기에게 두 장 꼴자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고 했다. 성진이는 찬기가 손가락으로 딱지를 뒤집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찬기는 똑바로 쳐서 넘겼다고 했다. 하지만 찬기한테 딱지를 잃었던 아이들이 성진이 편을 많이 들어주는 바람에 찬기가 딱지 한 장을 성진이한테 넘겨주는 걸로 타협했다.

  싸움은 흔히 있는 일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싸움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달리 생각하는 힘이 있어서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싸움을 예방할 수 있다. 이러면 가장 좋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면 기분 좋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길게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