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구완이의 용감한(?) 도전
아이들은 필기를 싫어한다. 써야 할 내용이 조금만 길면
“그걸 다 써야 돼요?”
하고 짜증부터 내는 아이들이 많다. 일일이 검사하면 억지로라도 쓰지만 이런 문제로 자주 티격태격한다.
읽기 시간이었다. 공부 주제는 이야기를 읽고 글쓴이의 생각을 찾는 방법이었다. <짧아진 바지>라는 글을 읽고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을 마칠 즈음 공부한 내용을 칠판에 썼다.
<이야기를 읽고 글쓴이의 생각을 찾는 방법>
1. 글의 제목을 보고 글쓴이의 생각을 알아본다.
2.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고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아본다.
3. 인물의 말과 행동을 내 생각이나 행동과 비교하며 알아본다.
이 시간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 공책에 정리하라고 했더니 아이들 입이 쑥 나왔다. 은서는
“저는 머리 속에 저장할게요.”
하고 꾀를 냈다.
"머리 속은 안돼. 책이나 공책에 정리해라!"
마침 쉬는 시간이 되어서 시간을 빼앗기가 미안하긴 했지만 밀어붙였다. 그래도 불만이 수그러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빨리 쓰고 놀면 좋을 텐데. 좋아, 그렇다면 정말 쓰기 싫은 사람은 이걸 오백 번 읽으면 안 써도 된다."
이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엄포였다. 하지만 용감한(?) 우리 반 아이들은 엄포에 넘어가지 않았다. 열서너 명이나 읽겠다고 나왔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래 좋다. 지금부터 셀 테니 읽어봐라."
나온 아이들이 신호에 맞춰 읽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중얼 중얼거리니 구분하기는 힘들었지만 한 번 읽을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주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손가락이 다섯 개 펴질 때쯤 대여섯 명만 남고 대부분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다 쓰고 검사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 쓴 사람은 쉬는 시간이다."
이렇게 말하니 몇 명이 더 들어가고 이제 찬기와 구완이만 남았다.
"너희들도 포기하고 들어가지? 아직 열 번도 안 됐는데?"
그러나 둘은 계속 하겠다고 했다. 고집이 대단했다. 나는 또 숫자를 세어주었다. 구완이와 찬기는 마치 스님이 염불하듯 열심히 읽어나갔다.
여덟 번쯤 읽었을까? 찬기가 슬그머니 자리로 가더니 연필을 잡고 쓰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아이는 구완이 뿐이었다. 구완이는 계속 읽었다. 열 번 읽었을 때 구완이에게 말했다.
"구완아, 이제 사백구십 번 남았다. 어쩔래?"
아이들도 구완이에게 포기하라고 권했다.
"그만 들어온나. 하루 종일 걸리겠다."
그러나 용감한 구완이는 기어이 한 번 더 읽었다. 그러더니 노는 아이들을 힐끗 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비록 포기하기는 했지만 정말 대단한 구완이였다.
단군신화를 보면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스무하루를 참아서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구완이도 열 번만 더 읽었으면 내용을 달달 외울 뻔 했다. 그랬다면 쓰는 것도 필요 없었을 텐데 아쉬웠다.
나중에 생각하니 오백 번은 좀 심했던 것 같다. 오십 번만 해도 많은데 말이다. 내가 너무 독했다.
[덧붙임] 새로 개편된 교과서는 학습지가 따로 없을 만큼 쓸 것이 많다. 한 시간 내내 무얼 쓰다가 보면 수업이 끝난다. 가르치는 처지에서는 쓸 곳이 있는데 비워놓으면 공부를 안 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일일이 쓰게 한다.
더구나 우리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 교육방침으로 ‘학습일기’라는 것을 쓴다. 그 날 공부했던 것을 과목별로 공책에 정리해야 한다. 저학년은 공부했던 것을 떠올려 정리하기가 어려우므로 수업마다 중요한 내용을 칠판에 써주는 일이 많다. 아이들은 그것을 메모해두었다가 학습일기에 쓴다.
학습한 것을 정리하는 것은 참 좋은 공부지만 쓸 내용이 많다보니 아이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러니 쓰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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