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금요일 흰 구름 듬성듬성
미술작품 이름표 달기
과학 수업을 앞두고 어제 색칠한 상상화에 붙일 작품 이름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주제, 그린이 이름, 작품설명 이렇게 세 가지를 쓰고 풀로 붙이도록 했다.
“다 썼으면 이름표를 그림 오른쪽 아래에 겹쳐 붙이세요. 그리고 이름표가 그림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붙일 위치를 알기 쉽게 칠판에 그림으로 그려주었더니 아이들이 알겠다고 했다.
이름표를 그림 위에 붙이도록 한 데는 까닭이 있다. 만들어놓은 이름표가 가로 10.5cm, 세로 6.5cm 크기다 보니 그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달 경우 게시판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그래서 작품을 몇 개 안 붙였는데도 꽉 차곤 했다. 오늘은 작품을 더 많이 붙이려고 방법을 달리해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잠시 뒤 다 쓴 아이들이 이름표를 붙이다가 질문을 쏟아냈다.
“선생님 오른쪽 아래 말고 왼쪽 아래는 안 돼요?”
“위쪽에 붙이면 안 돼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름표를 붙이면 중요한 그림을 가린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싶었다.
“오른쪽에 중요한 그림이 있으면 왼쪽에 붙이고, 왼쪽에도 중요한 그림이 있으면 위쪽에 어디든지 붙이도록 하자.”
하지만 아이들은 이 방법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쪽에도 중요한 그림이 있으면요?”
“정말 그런 게 있어? 어디 그림 한 번 보자.”
네 귀퉁이 어딘가에는 빈 공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그림을 들고 나왔다.
먼저 <미래의 정원>이라고 제목을 붙인 예진이 그림을 살펴보았다.
“예진아, 정말 붙일 데가 없어? 여기는 그림이 조금 밖에 안 가려지는데?”
내가 왼쪽 아래에 이름표를 놓자 예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 돼요. 거긴 침대가 가려져요.”
자세히 보니 거긴 미래의 예진이 방이었다. 어이구나 싶었다.
예진이가 설명을 해나갔다.
“오른쪽에 붙이면 화장실을 가리고요, 왼쪽 위에는 나무에 달린 음식을 가리고요, 오른쪽 위에는 하늘을 나는 편지가 가려져요.”
설명을 들으며 이름표를 이리 저리 놓아 보니 정말 한 군데도 붙일 데가 없었다. 작은 그림 하나하나에 예진이 생각이 촘촘히 녹아있었다. 그래서 미래의 예진이 방 아래에 선을 건드리지 않고 종이 바깥으로 내어 달기로 했다.
다음은 <날아다니는 세상>을 그려온 수민이였다.
“선생님 때문에 학교 가는 길 막았잖아요.”
수민이는 벌써 풀로 이름표를 붙여서 불만이었다.
“어디보자. 아 이거 안 떨어지네.”
이름표를 살짝 떼어보니 그림도 같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하필이면 학교 가는 길을 막아버려서 너무 미안했다.
<하늘공원>을 그린 태현이 그림을 보니 위에는 태양과 달이 양쪽에 있고 아래에는 무지개가 걸쳐있었다. 태양과 달을 가릴 수도 없고 무지개를 가리기도 그랬다.
<우주의 나라>를 그린 미경이는 네 귀퉁이마다 학교, 영화관, 기차역, 우주정거장을 그려놓았다. 어느 한 곳도 덜 중요한 곳이 없었다.
그림 몇 개를 더 보고 아이들한테 종이 바깥으로 이름표가 나와도 좋다고 다시 안내했다. 수민이처럼 이미 붙인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시판에 작품 몇 개 더 붙이려다가 소중한 아이들 생각을 지워버릴 뻔 했다. 정말 중요한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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