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9월 13일 - 뒤늦게 만난 김탁구

늙은어린왕자 2010. 9. 13. 18:05

9월 13일 월요일 뜨거운 햇살, 엷은 구름

뒤늦게 만난 김탁구


  지난 주말과 휴일에 요즘 인기 있는 ‘제빵왕 김탁구’를 보느라 늦은 밤까지 시간 투자를 많이 했다. 드라마에 빠지기 싫어서 여태껏 한 번도 안 봤는데 시청률이 40%를 넘는다고 하고 밀양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까지 입만 열면 ‘누구든지 김탁구처럼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던 게 자극이 됐다. 어머니는 약을 먹으면 잠이 온다고 김탁구 방송하는 날이면 신경 약도 안 드실 정도다.

  이틀 동안 여덟 편을 봤는데 듣던 대로 재미가 있었다. 특히 초반에 김탁구 배역으로 나온 까까머리 소년이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드라마로 쏙 빨려 들어갔다. 우리가 쓰는 부산경남 말투에 깡다구가 느껴지는 어린 김탁구가 있어서 드라마가 뜬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남들이 인정할지 모르지만 외모만 봤을 때 어린 김탁구 모습이 내 어릴 때 모습이랑 거의 똑같아서 더 끌렸다.

  드라마를 보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9월 4일에 있었던 2학기 봉사위원 선거 때 수인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수인이는 1등으로 당선됐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빠져도 꼬푸 없으면 못 마십니다. 쿵따라따 삐약’

  노래가 하도 요상해서 수인이를 불러 다시 들어보니 30년 전에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이런 노래였다. 수인이가 참 독특하다고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게 이 드라마에서 나왔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 때 못 맞춘 눈높이를 뒤늦게나마 맞추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드라마 시청연령이 15세 이상 아닌가?)

  아무튼 지난 이틀 동안 밤늦도록 드라마를 보고 아침에 멍하니 교실에 들어서니 모든 게 멍하게 다가왔다. 오늘 따라 아침 활동 안 한 아이가 유달리 많아 보이고, 생활일기나 학습일기장을 가져온 아이는 너무 적어 보였다. 교실이 어수선하고 수업이 뒤뚱거리는 게 오늘 내 모습을 빼닮았다.

  인기 드라마를 보며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좋지만 이 때문에 한주일의 시작이 너무 무거워졌다. 이러면서도 아침활동 안 했다고, 숙제 안 했다고 아이들을 탓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어린 김탁구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선생님예. 째째합니더. 선생님은 휴일 날 실컷 놀아놓고 아이들한테는 이거 해왔나 저거 해왔나 하면 안 되지예. 싸나이 답게 내일은 아이들 보고 팍 웃으뿌이소.” 


*깡다구 : 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