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목요일 구름 조금
수는 끝이 있을까?
수학 시간에 칠판에 원을 크게 그려놓고 원의 중심을 지나가는 선분을 몇 개 그었다. 원의 지름을 알아보는 게 이 시간 공부였다. 먼저 민석이에게 물었다.
“민석아, 원의 중심을 지나가는 선분을 몇 개 그을 수 있을까?”
“음. 두 개? 열 개?”
갑자기 질문을 받은 탓에 민석이가 조금 당황하며 답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겨우 열 개 밖에 못 그을까?”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답을 말했다.
“백 개.”
“천 개.”
“만 개.”
천 개나 만 개나 아이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숫자이긴 하다. 하지만 정확한 답은 아니었다.
“정말 천 개나 만 개 밖에 못 그릴까?”
은서가 말했다.
“수 없이.”
드디어 원하는 답이 나왔다. 칠판에 ‘수 없이’를 썼다. 그런데 여기서 호기심 어린 답이 나왔다.
“숫자가 끝날 때까지요.”
민서였다.
“숫자가 어떻게 끝나?”
“계속 쓰면 끝나잖아요.”
“숫자가 얼마나 많은데. 끝이 없어.”
“죽을 때까지 쓰면 되지요.”
“그럼 네가 죽으면?”
끝없는 숫자만큼이나 긴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시현이가 답했다.
“그 아들이 쓰고 또 그 아들이 쓰고 하면 되지요.”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아무도 못 말리겠구나 싶었다.
“그럼 빗물에 다 지워지겠네?”
곰곰이 듣고 있던 한별이는 엉뚱한 답을 말했다. 자손 대대로 쓰게 되면 오래 전에 쓴 건 비 맞고 보관이 안 돼서 다 지워진다는 상상을 한 것 같았다.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칠판에는 ‘수 없이’와 ‘한 없이’, ‘끝없이’를 함께 찾아 쓰고 다음 공부로 넘어갔다.
수업 시간에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어서 쉬는 시간에 민서를 불렀다.
“민서야, 어떻게 하면 숫자가 끝나겠니?”
민서는 미리 고민을 해두었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쓰고 또 손자한테 적으라고 해서 계속 적으면 다 쓸 수 있어요. 아기 안 낳는 부부는 없잖아요. 지구에 공책이 다 팔릴 때까지 쓰면 돼요. 그리고 사람이 멸망하면 숫자도 끝나요.”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사람이 멸망하면’ 이 부분은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제 아무리 숫자가 길어도 사람이 다 죽고 없어지면 더 세지도 쓸 수도 없으니까 그게 숫자의 끝이라는 말이다.
그럼 원의 중심을 지나는 선분(지름)도 어떤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긋고 또 손자가 긋고 손자의 손자가 긋고 하다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그으면 그게 끝이 되는구나. 그럼 이렇게 정리해야 하나?
‘셀 수 없이 많이 그을 수 있는데 끝은 있다.’
민서를 설득하려다가 오히려 내가 당했다. 역시 상상력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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