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0월 18일 - 시험지 매기기

늙은어린왕자 2010. 10. 18. 18:44

 10월 18일 월요일 맑으나 먼 곳은 보이지 않는 날

시험지 매기기


   마지막 시간에 지난 토요일에 나눠준 사회시험지를 매겼다.

  “이번에 오, 삼번에 사, 사번에는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더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 더 편리한 생활을 하기 위해 이런 게 들어가면 됩니다.”

  “네.”

  “어휴, 틀렸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아이들은 저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시험지를 매겨나갔다. 답을 맞힌 아이는 기뻐서, 틀린 아이는 아쉬워서 쫑알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육 번에 일, 칠 번에 삼, 팔 번에 대형마트, 구 번에…….”

  이 때 규리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기요.”

  “왜?”

  “팔 번에 아울렛은 안 돼요?”

  “아울렛도 답이 되냐고?”

  “네.”

  “어디 보자. 문제를 다시 보자.”

  민서한테 받은 문제지를 보니 이렇게 되어있었다.

  

  [문제] 다음에서 설명하는 장소는 무엇인지 쓰시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으로, 창고형 매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구입하는 곳이다.


  퍼뜩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장유에 있는 아울렛에 두어 번 가 보았지만 그런 곳을 대형마트라고 할 수 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이럴 땐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아울렛도 대형매장 맞제?”

  “네.”

  대답이 몇몇 아이들에게서만 나왔다.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수민이와 성진이가 못마땅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 재래시장은 왜 안돼요?”

  “재래시장은 다르지.”

  “시장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녀석들은 아웃렛이 답이 되는 지 안 되는 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이 써온 답이 맞는가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시장이 왜 안 되는 지 아는 사람? 결정적으로 뭔가 증거가 있겠지?”

  여러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태현이를 가리켰다.

  “창고형 매장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수민아, 시장이 창고형 매장이가?”

  수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시장은 뭐에요.”

  “시장은 대형마트처럼 한 건물이 아니잖아. 각각 건물이 따로 되어있지. 여기는 과일가게, 저기는 신발가게, 그 옆에는 옷 가게 이렇게 말야. 보기에는 모여 있지만 한 건물이 아니잖아.”

  그제야 수민이 입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성진이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창고는 더러운데.”
  성진이는 시골에 있는 농기구 창고를 떠올리는지 이맛살을 찌푸렸다. 시장은 정리된 걸로 보고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럼 아울렛은 뭐야? 아울렛은 한 건물인가?”

  나도 아울렛을 가긴 했지만 카메라 가게에만 잠시 들렀다 와서 다른 곳은 잘 모른다. 렌즈 말고는 다른 물건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밖에서 보기에는 한 건물처럼 보이긴 했는데 참.

  “아웃백은 한 건물인데.”

  “창고를 영어로 하면 아울렛 아니에요?”

  “근데 아울렛이 뭐에요?”

  “아울렛도 창고 맞아요”

  다양한 아이들 반응으로 봐선 도저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미경이가 새로운 장소를 들고 나왔다.

  “미니몰도 있는데. 창고형.”

  “그게 뭐야? 어딨어?”

  “부산에.”

  아울렛에 이어 미니몰까지 첩첩산중이 되었다. 미니몰은 솔직히 처음 들었다. 이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은서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 빨리 구 번으로 넘어가요. 이걸로 자꾸 시간 때우지 말고요. 배 고파요.”

  안 그래도 답답했는데 은서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주었다. 시계를 보니 정말 급식 시간이 다 됐다.

  “그럼 아울렛과 미니몰은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 아울렛과 미니몰, 마트 이런 걸 모두 합쳐서 대형마트라고 하고 넘어가자.”

  아이들이 대부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수민이가 아직 분이 안 풀린 모양이었다.

  “재래시장은 안 돼요?”

  다른 건 다 대형마트에 넣어주면서 왜 재래시장은 안 되냐는 듯 씩씩거리는 수민이 고집도 대단했다.

  “재래시장은 안 된다.”

  어쩔 수 없었다. ‘창고형’이라는 말만 없어도 어찌 해보겠는데.

  근데 아울렛과 미니몰은 대형마트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직접 가보든지 인터넷으로 알아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