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화요일 구름 조금. 학교 앞 공원에는 열린음악회 준비로 하루 종일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험과 영어수업
셋째시간 뒤 쉬는 시간, 곧 영어수업이서 어학실로 가라고 해도 아이들이 안 가겠다고 버텼다.
“그럼 영어 수업 안가겠단 말이야?”
“네.”
“왜?”
“내일 시험!”
“시험하고 영어하고 무슨 상관이고?”
“영어보다 시험이 중요하니까 그렇죠.”
정말 단 한 명도 가려고 준비하는 아이가 없었다. 영어수업을 포기하기로 집단 약속이라도 한 듯 했다.
“빨리 가라. 영어선생님 기다리겠다.”
“문자 보내세요. 오늘 수업 못 간다고요.”
“그럼 놀고 있으라고 하세요.”
막무가내였다.
“그럼 영어수업을 안 가야 할 이유를 다섯 가지만 말해봐라.”
여기저기서 이유가 정신없이 쏟아졌다.
“시험공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엄마한테 뒤지기 때문에”
“닌텐도를 못 고치기 때문에”
“휴대폰을 못 사기 때문에.”
“용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교실이 시끄러웠다. 들어보니 시험 점수로 엄마, 아빠랑 약속을 많이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약속이 중요해도 내 수업도 아닌데 마음대로 일정을 조정할 순 없었다.
그나저나 고함이라도 쳐서 보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을 했다.
“영어는 시험에 안 나오잖아요.”
오호 싶었다. 얼른 이 순간을 잡았다.
“자자자잠깐! 영어가 시험에 안 나온다고?”
“네.”
“그럼 체육이나 미술도 시험에 안 나오니까 안 해도 되겠네?”
“네.”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가볍고 우렁차게 들렸다. 내가 놓은 덫에 걸린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럼 아까 둘째시간에 체육은 왜 했노?”
핵심을 콕 찌르는 내 질문에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잠깐 뜸이 돌았다.
“체육은 노는 거니까요.”
“체육은 기말고사에 나오고 영어는 기말고사에 안 나오니까요.”
두세 명이 반박했지만 이미 힘을 잃은 주장이었다. 중간고사가 내일인데 벌써 기말고사 걱정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2교시 체육시간을 앞두고 문제풀이 계속 하면 안 되겠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다가 되레 내가 혼났다. 1반은 체육 했는데 우리는 왜 안 하냐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운동장에 나가 체육을 했다.
이 일을 생각하며 더욱 고삐를 세게 잡았다.
“체육은 나가면서 영어는 안 가려고 하니까 말이 안 되잖아?”
“말이니까 말은 되는데.”
“말이 안 되네요.”
더 이상 내 귀를 쩡쩡 울리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가자!”
태현이가 영어책을 챙기며 말했다. 아무도 태현이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벌써 눈치 빠른 몇몇은 교실 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이들 눈치를 긁어보니 시험은 핑계고 진짜 이유는 영어공부 자체가 싫은 거다. 싫은 공부라도 어쩔 수 없다. 해야 할 것은 힘들어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내일 시험을 모두 잘 쳐서 소원 이루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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