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토요일 맑다. 아침에는 제법 쌀쌀하다.
시험지 나눠주기
중간고사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험에 대비해서 복사해놓은 예상문제지를 나눠주려다가 아이들과 실랑이가 있었다.
“지금 시험 예상문제지를 나눠줄 겁니다. 좀 많지만 주말과 휴일에 풀어오세요.”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학원 숙제가 이십 바닥이에요.”
“오늘은 합창 연습, 성악연습, 율동 연습해야 되고요, 내일도 합창단 해야 되고 피아노도 해야 되고 할 일이 많아요.”
“시험 다 돼 간다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여덟 시에 와야 되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국수사과 문제집 요, 오늘 다 못 풀어서 내일도 풀어야 돼요.”
“한자 시험도 있어요. 11월 6일이에요.”
참 난감하였다. 바쁜 사정이 이해는 됐지만 그렇다고 시험지를 안 나눠줄 수는 없었다.
“문제집이나 학원 공부 하는 건 좋은데 그런 공부 많다고 선생님이 내주는 거 못 하겠어요 하는 건 좀 못마땅해. 나는 평소에 여러분한테 문제지 내 준적도 없고 아주 오랜만에 내주는데 못한다고 하면 기분 나쁘지.”
“그래도 많은 걸 어떻게 해요?”
“그럼 이걸 풀고 그걸 안 풀어야지.”
홧김에 이렇게 다그쳤다. 그러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곧 후회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우선 사회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더 나눠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시험지를 보니 더 나눠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 시험지들은 선생님들이 문제 낼 때 참고하는 거라서 다른 문제지보다 유리하다. 게다가 다음 주 수요일이 시험이라서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만으로는 다 못 풀 것 같았다.
“혹시 주말에 시간 많은 사람 있습니까?”
예닐곱 명이 손을 들었다.
“오늘은 학원 갔다 오면 되고 내일은 외할아버지 집에 갈 거에요.”
“오늘은 엄마 공부하는데 따라 갔다 오면 되고. 원래 받아놓은 문제는 안 풀어도 돼요.”
“저는 할 거 다했어요. 시간 많아요.”
“오늘은 숙제하고 놀면 되고 내일은 답사하고 나서 시간 남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시간이 넉넉한 아이들도 많았다.
“문제 더 풀어도 되겠네?”
그러자 다시 시간 없다는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럼 이렇게 하자. 원래 네 과목 다 해야 되는데 두 과목은 다음 주 수업 시간에 하고 이번 주말에는 사회랑 과학 두 과목만 풀자.”
이번에는 시간 많은 아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두 과목만 풀고 나머지는 다음 주에 풀자고 설득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요?”
“그럼 놀아.”
“진짜요?”
“어, 선생님이 놀라고 했어요?”
“그래 시간 남으면 놀아라. 뭔 공부를 더 할라고?”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박수를 쳤다. 과학 시험지를 나눠주고 수업을 마쳤다.
*시험 대비 문제지는 뭐든지 꼼꼼하게 잘 챙기는 옆 반 선생님이 복사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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