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3월 7일-시 공부(사진 추가)

늙은어린왕자 2011. 3. 8. 16:28

3월 7일 월요일 맑은 가운데 쌀쌀

시 공부


  읽기 시간에 어른들이 쓴 동시를 읽으며 ‘반복되는 표현을 살려 시를 낭송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는 공부를 했다. 오늘 읽은 시는 정완영이 쓴 ‘봄 오는 소리’다.


  별빛도 소곤소곤

  상추씨도 소곤소곤

  물오른 살구나무

  꽃가지도 소곤소곤

  밤새 내

  내 귀가 가려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봄이 오는 느낌을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인 한 시인의 감성이 잘 배어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를 공부할 때는 시인이 가졌던 감정이나 느낌을 떠올려보고 비슷한 내 경험이나 생각을 견주어보며 봄 느낌을 가져보는 게 중요하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되풀이되는 말을 찾아 운율을 살려 읽는 방법만 강조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시 제목도 그렇고 계절도 봄이 됐으니 분위기를 살려보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어제 분성산을 오르다가 입에 나뭇가지를 하나 물고 등산로 주변을 서성이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내가 근처에 있는데도 마른 삭정이 사이로 여유 있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 비둘기를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굵은 나무둥치 뒤에서 살며시 훔쳐보고 있으니 바로 옆에 있는 나무위로 폴짝 폴짝 뛰어 올라가는 게 아닌가.

 

 

 

 

 

  비둘기가 올라간 곳에는 놀랍게도 다른 비둘기 한 마리가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들 위에 앉아 몸을 요리조리 기울이며 집을 짓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비둘기 부부였다. 나뭇가지를 물고 가던 녀석이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은 까닭이 이해가 됐다. 곧 알을 낳을 짝을 두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둘기 부부가 봄 살림을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배낭에 넣어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때 찍은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모두들 비둘기들이 전해준 봄의 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저도 가 보고 싶어요.”

  “다음에 알 낳으면 또 찍어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한 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에 올라온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봄의 소리’를 감상했다. 음악에 따라 꽃과 식물이 피고 자라는 모습, 갖가지 곤충들이 뛰어노는 그림이 실감나게 흘러나왔다. 교실 밖은 꽃샘추위로 추운데 이 음악을 들으니 마치 온 세상이 봄으로 가득 찬 느낌을 주는 듯했다.

  이러다 보니 도입이 조금 길어져버렸다. 봄 느낌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교과서를 펴고 ‘봄 오는 소리’를 읽었다. 전체로도 읽고 남학생, 여학생 나누어서 읽기도 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되풀이되는 말을 찾아 끊어 읽으며 읽을 때의 느낌도 나누었다.

  시계를 힐끗 보니 길어진 도입 부분 때문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워낙 시가 짧아서 읽는 시간이나 되풀이되는 말 찾기 같은 활동이 길지 않은 탓이다.

  이번에는 모두가 시인이 되어보기로 하고 되풀이되는 구절 ‘(   )도 소곤소곤’에 들어갈 말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꽃잎’, ‘새싹’, ‘봄바람’, ‘배추씨’, ‘개구리’, ……. 봄 느낌을 주는 낱말이 쏙쏙 나왔다.

  “곰은 안 돼요?”

  “곰도 소곤소곤 해?”

  “곰도 겨울잠 자고 나오잖아요.”

  “그렇긴 한데 곰은 ‘우후우웅’ 하며 큰 소리를 내지 않을까?”

  “봄에는 힘이 없어서 소곤소곤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이들은 이런 저런 상상 보따리를 가져와서 풀어놓았다. 칠판에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말이다.

  교과서에는 시의 느낌을 살려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낭송’이라고 한다고  설명해놓았다. 그래서 다 함께 시를 ‘낭송’해보았다. 탁자를 툭툭 치며 박자를 맞춰 주었더니 처음 보다 훨씬 노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수업이 막바지다. 아이들은 이번 수업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 공부를 하고 난 느낌을 들어보았다.

  “진짜 봄이 온 것 같아요.”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수민이와 미경이가 느낌을 솔직하게 말했다.

  “마치 봄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요.”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민서와 희지도 잘 말했다. 수지는 조금 독특한 의견을 내놨다.

  “여름 방학이 생각나요.”

  “왜 여름 방학이 생각났지?”

  “봄이 지나면 여름이니까요.”

  수지는 벌써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이 와요.”

  동협이 말에 아이들이 웃었다.

  “동협이는 따뜻한 봄에 낮잠을 많이 자는가봐?”

  “네!”

  언뜻 생각하면 웃기려는 말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봄과 잠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비치는 오후에 교실에 앉아있으며  나도 많이 졸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느낌을 들어보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고 할까? 시 공부는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럽게 다가오는데 생각꾸러미를 잘 풀어준 아이들 덕분에 그럭저럭 무난하게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시간 공부 주제를 보니 또 ‘반복되는 표현을 살려 시 낭송하기’이다. 시와 어울리는 분위기를 살리면서 수업하는 건 교사가 해야 할 몫이지만 자칫 시가 ‘반복되는 표현이 들어가야 하는 글’이라는 인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까 걱정이 된다. 산 너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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