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3월 4일 - 과속

늙은어린왕자 2011. 3. 8. 16:27

3월 4일 금요일 맑음

과속


  읽기 시간에 1단원 공부를 안내하는 그림을 살펴보고 있는데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뒤에 가면 같은 내용이 나오니까 넘어가죠?”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해서 내가 물었다.

  “뒤에 같은 내용이 나오는 걸 어떻게 알아?”

  “학원에서 배웠거든요.”

  “요즘 학원에서 국어도 진도 나가?”

  “예. 저번에 배웠는데요.”

  새 학년을 맞아 읽기 공부 첫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인데 김이 푹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학원에서 공부 다 하면 학교 안 와도 되겠네?”

  “예!”

  살짝 기분이 나빠서 목소리를 깔고 물었는데 아이들 대답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학교 안 오면 공부를 안 해서 좋겠거니 싶어서 눈치 없이 대답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는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서 미리 공부한다면 예습일 텐데 그랬다고 학교에서 소홀히 하면 아무 도움이 안 되겠지요? 예습할 때 본 것을 학교에서 다시 확인하고 빠트린 게 있나 없나 잘 알아보면서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공부가 제대로 되겠지요.”

  몇몇 아이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다시 공부에 들어갔다.

  수학 시간에는 다섯 자리 수 공부를 했다. 교과서 공부가 끝나고 익힘 책을 풀자고 했더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 손이 올라왔다.

  “다 풀었는데 검사해주세요.”

  “다 푼 사람은 이제 뭐해요?”

   다섯 자리 수는 내용 자체가 쉽기도 하고 이미 학원 같은 곳에서 배운 아이들이 많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 풀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더니 몇몇 녀석들 입이 툭 튀어나왔다.

  “너희들은 과속이야. 과속이 뭔지 알지? 경찰한테 잡혀. 내가 경찰이니까 너희들을 잡아야겠다.”

  두 손을 뻗어 잡는 시늉을 하자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문제를 다 푼 아이들은 조용히 책을 보라고 하고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