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4월 8일 - 생각주머니에서 고른 글

늙은어린왕자 2011. 4. 11. 00:54

4월 8일 금요일 흐린 뒤 갬
생각주머니에서 고른 글

 

  아이들이 음악실로 간 동안 아침에 써 놓은 생각주머니 공책을 살펴보았다. 순수한 생각이 담긴 글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다섯 편을 골라 인쇄해두었다가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았다.  

 

어제 오후에 방사능비가 왔을 때
집 앞에 피어있는 꽃을 보니
조금 불쌍하였다.
비가 맞으면 차갑지 않을까
방사능비라서 시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채미)

 

  어제 방사능이 섞인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채미처럼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람은 우산을 쓰거나 건물 안에서 비를 피하면 되지만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동식물들은 방사능에 그대로 오염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채미가 용케 그 생각을 잡아 썼다. 마지막 행은 그대로 둬도 괜찮은데 ‘걱정이 되었다’로 바꾸면 더 좋겠다.  

 

하영이랑 같이 학교를 오는 길에
박물관 앞에 있는 꽃잎에
또르르르 빗방울이 구슬처럼
대구르르 굴러서 왔다 갔다 하며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음에도 비가 온 다음 날에
재미있는 빗방울을 보고 싶다. (최성정)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하고 산다. 생각은 주로 감각으로 무엇을 경험할 때 일어난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느낄 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또 흔히 쓰는 감각은 바로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성정이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또 본 것을 생생하게 떠올려 썼다.

 

오늘 아침 피아노 차타고 학교에 가는데
피아노 선생님이 시무룩해보였다.
말도 안 하고 인사도 안 받아주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예의가 어긋날 것 같아서
그냥 안 물어봤다.
그렇지만 지금도 마음이 찝찝하다. (김현민)

 

  평소와 다른 피아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했던 생각이 잘 드러난 글이다. 선생님이 시무룩하든 말든 내 일에만 신경 썼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글에서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며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평소에 현민이가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잘 드러난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 쯤은 하지만 이렇게 글로 써 놓으면 빛이 나고 읽는 이들에게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제 음악 선생님께서
리코더를 가져와라고 하였는데
음악실에 가보니 선생님이 안 오셨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 되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려갔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음악선생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였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강민지)

 

  이 글은 음악선생님을 생각하는 민지의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 골랐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간 글은 더 가치 있고 귀하다. 남들보다 불편하고 힘없는 사람이나 동물을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 누나와 같이 등교를 하는데
누나가 갑자기 물었다.
“세진아, 내 천 원 못봤어?”
그래서 나는 말했다.
“으이구, 주머니에 있잖아!”
누나는 내 말을 듣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한참을 뒤지더니 천 원을 찾았다.
누나가 고맙다고 했다.
누나가 바보 같다고 느꼈다. (문세진)

 

  돈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허둥대는 누나를 보며 했던 생각이 재미있는 글이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 평범한 생각도 써놓으면 재미있는 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