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수요일 비
공포의 장난 문자
아침에 경록이가 학교에 늦게 와서 쉬는 시간에 ‘스쿨케어 문자서비스’로 경록이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TV로 이 이 모습이 생중계되자 남자 아이들 몇 명이 신기하다며 다가왔다.
“이거 진짜 가요?”
“와, 내 이름도 있다.”
녀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TV 화면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했다. 녀석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장난끼가 슬슬 피어올랐다.
‘지난 수업 시간에 떠들었겠다? 어디 맛 좀 봐라.’
이런 생각을 하며 문자 받는 사람 칸에 ‘정성윤’을 넣고 문자를 입력했다.
‘성윤 어머니, 요즘 성윤이가 버릇없고 남의 말 가로채고 방귀도 많이 뀝니다. 방독면 부탁합니다.’
아이들은 문자 내용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메시지를 전송할까요?’라는 버튼이 나오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눌러!”를 외쳤다. 내가 누르는 척 하면서 ESC를 눌러 창이 사라지도록 했더니 아이들은 보낸 것으로 착각하고 박수를 쳤다.
“에이, 그거 안 갔죠?”
성윤이는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안 가긴. 진짜 갔다. 볼래?”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받는 사람 칸에 내 이름을 선택하고 성윤이한테 썼던 문자내용을 복사해서 보냈다. 잠시 뒤 내 휴대전화에서 보낸 문자가 나오자 성윤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갔다. 성윤이 골탕 먹이기는 대성공이었다.
다음은 한별이였다. 한별이에게는 이렇게 입력했다.
‘요즘 한별이가 발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고통이 심해요. 세제로 씻어주세요.’
역시 같은 방법으로 보내는 시늉을 했더니 아이들이 한별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정작 한별이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자기와 전혀 관계없으니 엄마한테 문자가 가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너무 맞지 않은 내용으로 보낸 탓에 한별이는 실패였다.
마지막으로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지상이를 보며 문자를 입력했다.
‘지상이가 학교생활이 엉망입니다. 매로 다스려 주십시오. 학교에서도 매로 다스리겠습니다.’
아이들은 성윤이 때와 마찬가지로 키득거리며 빨리 보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 선생님. 이건 아니죠.”
지상이가 늘 하는 말투로 팔을 저으며 다가왔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전송버튼을 꾹 누르는 척하며 ESC 자판을 슬쩍 눌렀다. 전송 창이 사라지자 문자가 갔다며 아이들이 박수 치며 환호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상이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잠깐 서 있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와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떠들썩하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상아, 왜 그래? 문자 때문에 그래?”
내가 다가가서 물었지만 지상이는 말도 않고 울기만 했다. 그 순간만큼은 능청스럽게 농담을 잘 하던 평소 때의 지상이가 아니었다. 지상이는 자리로 가서도 책상 위에 엎드려 울었다. 문자 내용이 지상이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상아, 문자 진짜로 간 거 아냐. 볼래?”
나는 컴퓨터로 돌아가서 거짓으로 문자를 보내는 과정을 TV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짜로 문자를 보내는 과정도 설명해주었다.
“맞아. 아까 선생님한테 보냈을 때는 ‘문자 전송 완료’라는 창이 떴어. 근데 지상이는 안 떴어.”
TV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경록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상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다행이었다.
평소에 자기가 가장 잘 생겼다며 뻔뻔한(?) 말도 자주 하던 지상이가 이렇게 약한 구석이 있는 줄 몰랐다. 장난도 가볍게 해야 재미있게 넘어가는데 아무래도 오늘 내 장난이 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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