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곁에 계셨던 ‘멘토’ 이오덕 선생님
방학을 맞아 이주영 선생님이 쓰신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를 꼬박 하루 동안 읽었다. 글쓰기회원이라고 남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기만 했지 제 역할을 못한 반성으로 다시 공부를 하려는 마음에서 고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선생님의 삶과 생각을 많이 알 수 있었다.
되돌아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로 책이나 글쓰기회보를 보며 선생님의 생각과 만났고, 직접 보더라도 강연하시는 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교사 생활 20년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분으로 남아 있다.
처음 선생님을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이다. 어느 가을날, 책을 아주 많이 읽던 과 선배가 불쑥 책 한 권을 내밀며 보라고 했다. 「삶과 믿음의 교실」이란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봤는데 아주 좋은 책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나는 그 책을 받아들고 읽을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다. 왜냐하면 대학생이니만큼 사회를 먼저 알고 교육은 나중에 알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전까지 나는 인문, 사회과학을 다룬 책을 주로 읽고 있었다.
책장을 넘겨보니 그 선배가 읽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번호를 붙인 곳도 있고 자를 대서 밑줄을 쳐 놓은 곳도 있었다. 마치 내가 공부하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보는 듯 했다. 무슨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기에 이렇게 꼼꼼히 읽었을까, 선배를 배신(?)하려던 생각은 사라지고 이런 호기심이 나를 책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내용은 교대 1학년생인 내가 읽기에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곳이 많았다. 사회와 교육을 보는 눈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학교 현실을 짚어놓은 부분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이런 글을 쓰는 선생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교사를 기르는 교대에 들어갔지만 아직 학교 현실이나 올바른 교사의 모습에 관해 아무런 생각이 없던 내게 「삶과 믿음의 교실」은 ‘교육’에 관해 생각하게 하고, 또 내가 장차 교사가 될 교대생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선생님과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 역시 책을 통해서였다. 2학년 올라가면서 사회현실과 교육을 함께 연구하는 ‘맥’이라는 교육연구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선생님 영향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짝사랑하던 선배가 있어서 선택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주마다 돌아가며 책 읽고 간추린 것을 발표했는데, 어느 날 한 선배가 아이들이 쓴 시를 여러 편 가져와서 읽어주었다. 그런데 그 시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생생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아기를 업고/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그래서 나는 아기를/방에 재워 놓고 나니까/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는 시는 지금도 또렷이 생각난다.
그 선배는 글쓰기교육에 관심이 많다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울면서 하는 숙제>, <글쓰기, 이 좋은 공부> 같은 책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책방으로 달려가 이 책들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글쓰기교육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고, 앞으로 내가 만날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 학생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책으로만 뵙던 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무척 기대를 하며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강연장인 학생회관 콘서트홀에는 학생들 수백 명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교수님들도 몇 명 보였다.
선생님은 그 때의 학교 사정에 관해 간단히 말씀하시고 글쓰기 교육과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해 생각하시는 것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들어보니 말씀을 퍽 잘 하시지는 않았다. 말 속도도 느리고 목소리 높이도 낮아서 마치 천천히 책을 읽는 듯 했다. 하지만 빈 말 없이 차근차근 하시는 이야기 속에 진심과 진실이 담겨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질문할 때는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우리 아이들’(또는 ‘우리 어린이들’)을 몇 번이나 강조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국어과 교수님 한 분이 언어 이론을 내세우며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해 (공격하듯) 질문했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 문제는 따로 이야기 하지요.” 하며 피해가셨다.
요즘 같으면 ‘나꼼수’ 공연 쯤 되는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나는 세상에 뒤섞여 있는 참과 거짓, 참교육과 거짓교육, 참글과 거짓글에 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야할 길은 ‘참’이 있는 길이라는 것을 속으로 다지게 되었다. 이 생각은 남은 대학생활과 졸업한 뒤 발령이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강연이 내게는 선생님과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교사로 발령 난 뒤 나는 글쓰기회에 가입했다. 활동은 부산에서 했다. 그러나 교사로 일한지 3년째인 94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대학 1학년 때 다친 무릎이 곪아 걸어 막대기나 손잡이 없이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결국 9월부터 병가를 내어 학교를 쉬어야 했다. 물론 글쓰기회 활동도 접어야 했다.
여름방학인 7월 말부터 병가 기간인 10월까지 꼬박 3달을 밀양 부모님 집에서 쉬면서 민간요법과 병원치료를 계속했는데, 다리는 쉬이 낫지도 않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위장병, 심장병까지 덧붙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지냈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기쓰기와 책읽기 밖에 없었다. 일기쓰기는 답답한 마음도 풀고 스스로 위로도 받게 해주었는데, 만약 일기를 쓰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책읽기도 마찬가지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내가 읽었던 책은 대부분 이오덕 선생님을 비롯해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쓰신 책과 글쓰기 회보였다. 병을 훌훌 털고 학교에 가서 하고 싶었던 일이 대부분 이 책들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오덕 선생님 글이 내게 큰 힘을 주었던지 몇 군데나 적혀있었다.
1994년 8월 4일 맑고 더움, 하늘에 흰 구름 조금.
이오덕 선생님이 쓴 「이오덕 교육일기」를 읽고 있다. ①, ②권 중 ①권을 반쯤 읽었다. 1962년에서 72년까지 박정희 군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의 절반에 있었던 일들을 쓴 글이다. 어쩌면 옛날과 오늘날이 그렇게 닮았나 해서 놀랐다. 이전에 <우리교육>에서 펴낸 전은이 선생님의 「교단 30년 일기」에서 20~30년 전 교육 상황을 조금 맛보기는 했지만, 전 선생님의 글이 학교 밖 생활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 맛이 좀 약했던 데 비해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특유의 고집과 소신의 눈으로 바라본 것을 쓴 글이라 당시 (학교)모습이 또렷이 눈에 그려진다.
줄곧 비판 일색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학교와 세상을 어둡게 썼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비판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과 사회가 썩은 상태에서 올바른 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이 선생님의 눈에 학교나 사회가 비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올바른 잣대를 대고 바라보니 거의가 다 썩어있었고, 그걸 쓰다 보니 자연히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올곧은 소신을 누그러뜨리고 휩쓸렸다면 이런 글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어지간히 참고 견디며 때로는 싸우며 또 참고 견뎠다. (줄임)
1994년 8월 7일 흰 구름 조금.
「이오덕 교육일기」②번까지 다 읽었다. 이오덕 선생님의 기록정신은 우러러볼만하다.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몸과 마음이 자연 그 자체다. 조금이라도 더러운 곳, 세속화된 사람이 풍기는 악취가 나는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썩어빠진 사회에서 썩어빠진 교육자들이 썩어빠진 교육을 하는 ‘지옥’에서 수없이 때려치울 걸 고민하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아이들에 대한 믿음)으로 교육자로서 생명을 유지했다. 용케도 붙어계셨다.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먼저, 또렷한 신념을 갖고 생활해야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기준이 없을 때 뒤틀린 사회에서 뒤틀림을 도와주는 또 하나의 뒤틀린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올바른 눈으로 본 세상을 한 치의 덧붙임이나 줄임 없이 기록하면서 반성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자료로 삼아야겠다는 것이다. 기록하는 동안에 더더욱 올바른 기준은 세워지고 지켜지는 것이다. 타락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다음, 제일 중요한 것으로 모든 생활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로서 생명은 이것을 지키는 일 뿐이다. (줄임)
정말 이 책을 읽고 나니 (학교는) 수많은 모순이 얽혀 있는 곳이지만 몸이 어서 나아 (학교에) 가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일기를 다시 들춰보니 그 때 했던 생각이 부끄럽기만 하다. 최근에 글쓰기회 지역 모임 활동을 하며 글쓰기지도와 교실일기 쓰기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그 전까지 내 삶은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던 까닭이다.
선생님은 가까이서 뵙고 말씀을 듣지는 못했지만 내가 사회와 교육을 모르던 철없던 시절부터 제법 경험을 쌓은 지금까지 고비마다 곁에 오셔서 바른 길로 가라고 채찍질 하셨던 ‘멘토’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 선생님을 뵙고 싶어도 뵙지 못하는 지금, 뒤늦게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따르고자 하니 아쉬움이 크다.
**보리출판사 <개똥이네 집>에 실음. 2012. 01. 12 고침.
'삶을가꾸는글쓰기 > 생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관검색어 (0) | 2013.03.14 |
---|---|
자동차에서 벗어나기 (0) | 2013.01.30 |
서낙동강 중사도 나들이 (0) | 2010.10.14 |
4대강 공사로 사라지는 아름다운 낙동강 모래톱 (0) | 2010.01.16 |
[스크랩] 히힛 아고라 메인에 내글 떴다!! (0) | 2010.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