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서 벗어나기
어제, 식구들과 울산에 갈 일이 있어서 주차장에 차를 몰러 갔더니 앞 선반 위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일주일 동안 차를 세워두면서 담배 냄새나 김치 국물 냄새 빼려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은 탓이다. 요즘 내 차는 이렇게 일주일씩 주차장에 서 있다가 주말에만 잠깐 움직이곤 한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약 4km다. 자동차로 8~10분, 자전거로 13~15분, 걸어서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이처럼 여러 가지 통근 수단이 있었지만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이 이용한 통근수단은 자동차다. 비율로 따지면 85% 정도 된다. 자전거가 10% 정도로 두 번째이고, 나머지는 걷기나 택시타기, 다른 사람 차 얻어 타기이다.
자전거는 해반천 걷는 길을 따라 가면 신호등 없이 갈 수 있어서 빠른 편이지만 옷 갈아입기가 번거롭고 날씨가 궂으면 타기 어려운 점이 있다. 걷기도 좋긴 하지만 바쁜 아침에 시간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자동차는 무엇보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탈 수 있는데다 빨리 학교로 가게 해준다. ‘경쟁력’으로 치면 최고인 셈이다.
이처럼 든든했던 사랑스런 나의 ‘애마’가 요즘 하염없이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게 된 건 통근 수단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로 경전철을 타고 다닌다.
부산과 김해를 오가는 경전철은 지난 해 9월에 개통했다. 처음에는 호기심도 있고 통근수단을 바꾸려는 마음도 있어서 몇 번 타고 다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자동차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가장 큰 까닭은 시간이었다. 집에서 경전철 역까지 거리는 팔백 미터 남짓 되는데, 집을 나서서 승강장까지 오르면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 전동차를 기다렸다가 타고, 내릴 역까지 가는데 또 10분 정도 걸리고, 역에서 삼백 미터 떨어진 학교까지 가는데 3분 정도 걸린다. 자동차로 10분 만에 오가는데 익숙해진 생활리듬을 23분으로 늘려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올 해 교무를 맡으면서 학교에 일찍 갈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레 일찍 일어나게 되면서 아침 시간이 많아졌다. 자동차로 급히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가 생기자 몇 번 경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의외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두 가지 교통수단을 비교해봤더니 전철이 훨씬 이롭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때가 3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갈 즈음이다. 지금까지 한 달 남짓 전철을 타면서 이제는 생각을 굳혔다.
전철을 타고 출근하려면 어쨌든 1킬로미터는 걸어야 한다. 퇴근까지 합치면 2킬로미터가 된다. 자동차든 전철이든 타는 시간은 비슷하므로 걸어야 하는 2킬로미터가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였던 셈이다.
전철을 타고 다녀보니 무엇보다 자동차를 몰 때 생기던 급한 마음이 없어졌다. 자동차를 몰면 이상하게도 앞이나 옆에서 달리는 차들을 의식하게 되고, 푸른 신호등이 빨갛게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지나가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게 된다. 과속하지 않아도 10분만 달려가면 학교에 들어가는데도 말이다.
물론 차를 몰고 다닐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음 편히 전철을 타고 다니다보니 내가 이랬구나 하고 느낀 거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여유, 타고 가면서 창밖을 내다보는 여유, 함께 전철을 타고 가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그것이다. 때로는 신문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재미도 있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걸으면서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잠깐 걸으면서 이것저것을 보다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해반천 물속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도 힐끗 보고, 산책로 주변에 피고 지는 꽃들과 날이 다르게 푸름을 더하는 나무들도 본다. 또 거리에서는 종종걸음으로 등교하는 아이들과 직장인들, 장터에서 짐을 푸는 장꾼들을 눈여겨보기도 한다.
자동차에서 전철로 옮겨가기 전에 제일 부담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걷기였는데 어느 새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니 이 보다 더한 역설이 있을까 싶다. 이런 기분이 이어진다면 다시 자동차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예전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버스나 택시도 가끔 타게 되어 여러모로 변화가 많다. 아직은 조금 맛본 여유라서 이 달콤한 느낌을 얼마나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다지고 또 다져서 내 삶의 큰 기둥으로 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201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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