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내는 소리
3교시 수학시간에 규칙 찾기 공부를 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도형을 규칙에 맞게 늘어놓거나 새로운 규칙을 찾아보는 공부다. 곡식에 비유하자면 콩-팥-콩-(팥) 처럼 단순한 규칙에서부터 콩-팥-팥-콩-팥-(팥) 식으로 다음에 올 것을 예상하거나 직접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활동이 끝나고 교과서 문제풀기를 마친 아이들이 검사 받으려고 줄을 섰다. 그런데 책을 매기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걸리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숫자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 나름의 규칙으로 도형을 늘어놓아서 파악하는 데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줄은 길게 늘어서 있고 매기는 속도는 더디니 내 마음도 덩달아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매기는 방식을 바꿨다.
“빨간원-파란오각형-빨간원-파란오각형, ….”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읽으면서 매겨나갔는데 이때부터는
“쿵-짝-쿵-짝”
소리를 내며 매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보니 속도도 빨라지고 지루하게 기다리던 아이들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몇 명이 지나간 뒤부터는 소리를 조금 발전(?)시켰다. ‘빨간원-노란삼각형-노란삼각형’ 순서로 된 곳에는 ‘뿌직직’ , ‘빨간원-파란오각형-노란삼각형’ 순서로 된 데는 ‘뿌지직’ 같은 소리를 붙였다. 아이들은 이런 소리가 주로 화장실에서 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소문은 냄새처럼 즉시 퍼졌다.
“야! 선생님이 도형에 똥 누는 소리 붙인데이.”
소문을 들은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표정을 보니 자기 차례에는 어떤 소리가 나올까 기대하는 마음도 엿보였다. 자연스럽게 지겨움도 사라졌다.
이렇게 비슷한 소리로 몇 명을 거쳤더니 검사받으러 온 아이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왜 똥 싸는 소리만 좋아해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싶었다. 나는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방구뽕'이나 '똥방구’ 같은 말로 변화를 주었다.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바꾸니 느낌이 한결 부드러졌다.
정원이는 이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한 동안 내 의자 뒤에서 냄새 날지도 모르는 소리를 웃으며 감상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리로 들어가 도형을 붙이더니 줄을 섰다.
아이들이 반쯤 지나가고 방구 소리도 시들해질 즈음 지수 차례가 되었다. 지수는 방구 소리 대신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희은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디딩딩’, ‘빵빠라’ 같은 악기 소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선생님은 왜 우리한테는 똥방구 소리 내고 지수한테는 음악소리 들려줘요?”
냄새나는 소리를 듣고 간 아이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오히려 코 파는 소리도 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 파는 소리는 그럴 듯한 소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기꺼이 문제를 풀고 줄을 섰던 정원이는 똥 누는 소리, 방구 소리, 음악 소리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고양이 소리를 내 달라고 주문했다.
“야옹-야옹-야옹”
“야아옹-야아옹-야아옹”
교실에는 난데없이 고양이 소리가 나즈막히 울렸다.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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