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4 교실일기

4월 1일 - 곤충밥

늙은어린왕자 2014. 9. 23. 17:51

[별에서 온 선생님] 곤충밥

 

점심 시간에 준민이, 아정이, 희은이, 가영이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옆에 앉은 준민이(돌개구쟁이)가 말 없이 밥을 먹더니 갑자기 이것 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왜?"
"선생님 별에서는 점심 시간에 뭘 먹어요?"

느닷없이 별 타령 하는 걸 보니 아직 밥은 있는 데 마땅히 먹을 반찬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준민이는 닭 날개 두개를 후딱 해치우고 앉아 있다.

"우리 별에서는 밥 대신 곤충을 먹어."
"예에? 곤충을 어떻게 먹어요!"

준민이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다. 앞에 앉은 가영이와 희은이는 맛있게 밥 먹는데 뭔 더러운 이야기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지구 곤충하고는 달라."

준민이가 의자를 바싹 당겨앉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달라요?"

준민이 눈빛을 보니 닭 날개 먹을 때 처럼 진지하다.

"지구 곤충은 먹기가 힘들잖아? 우리 별 곤충은 아주 맛있어. 어떤 곤충은 설탕처럼 달콤하고, 어떤 곤충은 아이스크림 맛도 나."
"선생님도 먹어봤어요?"
"그럼, 당연하지. 그거 안 먹으면 죽었게?"

준민이는 점점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내가 별에서 왔다는 걸 확실히 믿고 있는 준민이다웠다.

"진짜 아이스크림 맛 나요?"

곤충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렸던 아정이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얼마나 뽀송뽀송하고 달콤한데. 지구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하고 비슷해."
"우와, 맛있겠다."

아정이는 가게에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우리 별에는 소금 곤충도 있어."
"진짜 짜요?"
"밥 할 때 그거 넣어서 먹어요?"
"국 끓일 때 넣으면 되겠다."

대화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밥도 없는 별에 국을 끓이는 상상이라니... 어쨌든 처음부터 거부감을 보이던 희은이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정이는 또 궁금한 게 생겼다.

"초코맛 곤충도 있어요?"
"그럼. 그 곤충은 색깔도 까무잡잡해."
"우와, 그럼 난 초코맛 곤충 먹어보고 싶다."

이 때 처음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가영이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영이는 외계인을 믿지 않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가영이처럼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희은이에게 내가 물었다.

"희은이는 어떤 거 먹어보고 싶니?"

희은이는 지구 곤충을 떠올렸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아이스크림 곤충요."

말이 끝나자 희은이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도 멋쩍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 곤충 아무나 잡아먹어도 돼요?"

준민이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지구에서는 맛있는 걸 먹으려면 돈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응. 온 세상에 늘려 있어. 그냥 주워먹으면 돼."

준민이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물었다.

"근데 선생님은 선생님 별로 갈 거예요?"

무슨 뜻일까? 예전부터 나는 지구 일이 끝나면 간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래. 지구 일 끝나면 갈거야."

준민이가 앞에 앉은 아이들한테 이 소식을 알렸다.

"야, 선생님이 일 끝나면 선생님 별로 돌아간대."

하지만 앞에 앉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별에 가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식판 갖다 놓고 교실로 가는 게 더 급한 것 같았다. 얼른 가서 딱지치기를 해야 하니까.

"저, 선생님!"

아이들 눈치를 살피던 준민이가 살짝 나를 불렀다.

"선생님 별에 갈 때 저도 같이 데려가주세요."

준민이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왜?"
"가서 아이스크림 곤충 먹고 싶어서요."

준민이 얼굴을 보니 아까 닭 날개 먹을 때 보다 몇 배나 더 진지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식판에 남아 있는 밥이나 빨리 먹으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대신 짧게 답했다.

"알았다."

준민이는 기쁜 표정으로 아직 밥알이 남아 있는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녀석 눈 앞에는 벌써 아이스크림 곤충, 초코 곤충, 설탕 곤충이 어른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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