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거짓말쟁이
국어 1단원 <생각을 나타내어요>에서는 글을 읽을 때 자신이 경험한 일을 떠올리는 공부를 한다. 오늘 공부 주제는 '거짓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경험 속에 있는 거짓말을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아이들의 경험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거짓말' 하면 떠오르는 것을 발표해 보았다. '양치기 소년', '호랑이', '만우절', '늑대'처럼 널리 알고 있는 이야기나 말을 떠올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엄마', '동생', '형', '친구', '사범님'같이 거짓말을 했던 인물을 떠올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지지받은 낱말이 '선생님',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학기초부터 내가 외계에서 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벌렸던 것이 아이들의 뇌리에 각인된 모양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몇몇을 빼고는 거의 내 말을 믿는 아이들은 없어보였다.
"선생님이 거짓말쟁이라고 믿는 사람은 안드로메다 볼 자격이 없어요. 으흠."
이런 협박(?)은 아예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증거를 대 보라며 맞받는 바람에 나는 궁지에 내몰렸다. 증거가 어디있는가? 내가 여태껏 했던 이야기가 증거지. 하는 수 없이 여름 방학 전에 지구 벌레한테 물렸을 때 치료해준 삼성병원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내가 외계인인지 지구인인지 알 수 있다고 강변했지만 마침 그 무렵 삼성 병원에 입원했던 재웅이가 증인으로 나서는 바람에 이것도 헛수고였다. 재웅이는 한 술 더 떴다.
"제가 의사선생님한테 (선생님이 외계인인지) 물어봤어요!"
세상에나, 이런 새빨간 거짓말이! 나를 치료한 의사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러나 자꾸 물고 늘어지다가는 내 정체가 탄로날 처지라 이 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어쨌든 나는 한 학기도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서 거짓말쟁이로 단단히 낙인 찍혀 있었다. 수업하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이 비참함이란!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학기 개학하는 날 '선생님이 안드로메다에서 왔다고 하셨잖아요? 전 그 말 믿어요.'라고 편지 써준 다빈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 편지를 주지는 않았지만 늘 긍정하는 눈빛을 보내주는 몇몇 아이들이 있어서 외계인의 숨결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다시 수업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거짓말 경험을 메모하고 모둠별로 발표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각 모둠에서 자기 경험을 가장 실감나게 말한 사람을 골랐다. 이 사람이 모둠 대표가 되어 전체 앞에서 말할 시간을 가졌다. 발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박준하 / 뒤에 황소 있다>
동생하고 아이스크림 먹을 때 동생한테 "뒤에 황소 있다!"고 말하고 동생이 뒤를 보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김나연 / 숙제 다 했어>
숙제를 안 했는데 엄마가 숙제했냐고 물어봐서 난처했다. 그런데 엄마가 화장실 간 사이에 후다닥 해채웠다. 엄마가 나와서 숙제 했냐고 물어서 숙제 다 했다고 말했다. 너무 후회하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이준민 / 나 돈 있다>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마침 형 돈이 있어서 500원 훔쳤다. 형이 물어봐서 원래부터 돈 있었다고 거짓말 했다. 나중에 형에게 들켜서 혼났다.
<민지수 / 배아파>
밥을 먹기 싫었는데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해서 배아파서 못 먹겠다고 말했다. 거짓말 해서 엄마한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백지혜 / 사탕 세 개 사줄게>
동생한테 "500원 주면 사탕 세 개 사줄게." 해놓고 동생이 준 500원만 가지고 사탕을 안 사줬다. 동생에게 거짓말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무성 / 백 점 맞았어>
영어학원에서 시험 쳤는데 100점을 안 맞았는데 할머니가 걱정하실까봐 100점 맞았다고 거짓말 했다. 괜히 할머니한테 거짓말 했다.
<구본희 / 눈높이 가고 있어>
태권도 마치고 할머니집에 간다고 했는데 깜빡하고 축구를 했다. 엄마가 전화로 어디냐고 물어봐서 눈높이 간다고 거짓말 했다. 다음부터는 꼭 갈께 엄마.
<박서진 / 숙제 다섯 장 했어>
내가 숙제를 다섯 장 해야하는데 4장 밖에 못했다. 그런데 다섯 장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발표가 끝나고 손을 들어 조사해보니 준하의 <뒤에 황소 있다>가 가장 실감나는 이야기로 뽑혔다. 내가 "준하 이야기가 최고 이야기로 뽑혔습니다. 짝짝짝!"이라고 하자 준하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나연이 말이 재치있었다.
"그럼, 준하가 일등 거짓말쟁이인가요?"
우리는 나연이 말에 한 바탕 웃었다. 준하는 이 일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어쨌거나 오늘은 거짓말 경험 이야기로 국어시간이 꽤 재미있었다.
만약 준하, 재웅, 내가 거짓말 대결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만치 않은 대결이 될 듯하다. 결과는 각자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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