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아이들은 남이다!

늙은어린왕자 2005. 9. 29. 23:59

 

  "아이들은 남이다."

 

  다소 도발적인 표현이지요. 강극래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교직이 정말 내게도 천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겐 아닌 것 같네요. 나는 천사같은 교사가 될 자질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애초에 교직에 뜻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하겠지요. 

  그럼에도 앞으로 교직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둑들은 도둑질 하는게 천직이어서 계속 하기보다 도둑질을 오래 하다보니 체질이 되어서 한다고 봐야겠지요. 내게도 교직은 체질적인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네요.

  난 나를 떠난 아이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시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요. 어쨋든 1년 동안 참 귀한 인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나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했을 뿐 결국 그들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생각과 목표는 다 다르지요. 좀 비유를 하자면 새(아이들)가 살아가면서 특정 기간에 특정 나무(교사)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뿐이라는 거지요.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다른 삶터를 찾아 훨훨 날아갑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새들을 기다리는 거지요.

  그들이 '나'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을 때 나(나무)는 무슨 존재일까요.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가지에는 앉지 마라, 저 잎에는 똥을 누지 마라, 너무 시끄럽게 지저귀지 마라, 멀리 벗어나지 마라고 잔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나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그저 묵묵히 서 있기만 할 뿐이지요.

  나무는 부지런히 햇빛과 바람과 물을 모아서 잎을 키우고 그늘을 만들고 바람막이가 되어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서 있기만 합니다. 나무가 그런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새들은 금방 둥지를 버리고 떠나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무성한 잎사귀 매달고 줄기와 가지 튼튼하게 키우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새들이 잦아질 겁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라는 교사가 30-40명의 아이들한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욕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월권으로 봐도 좋겠지요. 나는 나대로 내 몫의 삶을 살아가고, 아이들(새들)은 그들 나름대로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세상을 배워나가겠지요.

 

  아이들은 남이다!

  남남도 아니고 가족관계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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