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1월 22일 - 대신 쓴 교실이야기

늙은어린왕자 2010. 11. 24. 18:54

11월 22일 월요일 맑은 하늘에 노란 은행잎이 한 주먹씩 휘날리는 날.

대신 쓴 교실이야기


  대개 회의를 하는 출장은 오후에 가는데 이번에는 교육청 일정 때문에 오전에 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처음으로 하루 수업을 못 하고 창원까지 출장을 다녀왔다.

  날마다 써왔던 교실이야기를 빠뜨리기 싫어서 아이들한테 부탁했더니 네 명이 썼다. 담임이 없는 동안 아이들의 눈으로 본 교실 모습이 어떨까 궁금하였다. 먼저 윤재가 쓴 이야기다.

 

  선생님의 출장

  선생님이 출장을 가셨다.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5교시에

  아이들은 3반 선생님이 올까봐 걱정이다.

  1교시 읽기시간

  6학년 1반 선생님이 오신다.

  아이들은 다행인 것처럼 ‘휴’라고 한다.

  딩동 2교시 수학시간

  3학년 1반 선생님이 오셨다.

  아이들은 또 ‘휴’를 외친다.

  수학을 하는데 선생님이 화를 내셔서 무섭다.

  딩동 3교시 음악시간

  3반 선생님이 오셔서 버럭 

  “니들 책 들고 복도에 서!”

  아이들은 어쩔 줄 모르고 복도에 선다.

  딩동 4교시 사회시간

  아이들은 “안 돼!”라는 표정을 짓는다.

  3학년 3반 선생님이 오셔서 그렇다.

  공부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공부를 해보니 3반 선생님이 착한 거 같다.

  너무 다행이다.

  딩동 5교시 한자 시간

  4학년 2반 선생님이 오셨다.

  수업이 끝났다.

  우리 반 선생님이 오셨다.

  급식소에 왔다.

  우리 반 선생님이 낫다. (이윤재)


  윤재 이야기를 읽어보니 마치 시를 읽는 듯해서 긴 글을 짧게 끊어보았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올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나타냈다. 특히 3반 선생님이 오셨을 때 반응과 공부할 때 느낌을 잘 살려 썼다. 끝에 선생님을 생각해주는 말도 넣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3반 선생님이 보시면 기분 나쁠 것 같다. 마치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3반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반 선생님은 무슨 일이든지 깔끔하게 하시고 먹을 것이 있으면 꼭 옆 사람과 나눠먹는 인정 많은 분이시다.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많은 오해를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오해를 풀면 좋겠다. 다음은 미경이글이다.


  뷔페식 선생님

  선생님께서 출장을 가셔서 다른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해주셨다. 다행히도 착하신 선생님들이셨다. 우리 선생님보다도 착했다.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착해서 좋았는데 나쁜 점은 수업이 재미가 없었다. (손미경)


  미경이는 짤막하게 하루를 정리했다. 시간마다 각각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뷔페식 선생님’이라고 표현한 점이 재미있다. 미경이처럼 생각하면 중학교부터는 모두 ‘뷔페식’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말이 글을 살렸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아이들

  오늘 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다른 선생님들이 오셨다. 6학년 1반 김무경 선생님이 오셨을 때는 선생님이 착해서 그런지 떠들고 있는 우리들을 귀엽게 봐주셔서 친구들에게 짜증이 났다.

  2교시에는 정대영 선생님이 오셨는데 칠판을 엉망으로 만드셔서 공부시간에 아이들이 가서 지우고 또 지웠다. 그 때는 좀 즐겁고 웃겼다.

  3교시에는 음악이었다. 조금 선생님이 무서우셔서 아이들이 꼼짝도 못해서 웃겼다. 리코더 할 때도 못한다고 혼을 내니 아이들이 “너 나가라.”, “니가 해라.” 하며 티격태격 싸웠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무서워했지만 금방 웃고 공부했다.

  4교시엔 3반 손미경 선생님이 오셨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무서워했지만 금방 웃고 공부했다. 사회 시간에 인도에서는 왼 손은 똥 닦을 때 써서 오른손으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5교시엔 4학년 2반 선생님께서 오셨다. 아이들이 한자를 “다 했다.”, “아! 쉽다.”, “다 풀었다. 히히히.”하며 시끌벅적했따. 선생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야들아, 우리 반 선생님 말씀 잘 듣자. 공부 열심히 하자. (손은서)


  은서는 어른스럽게 선생님의 눈으로 생각하고 글을 썼다. 글을 아이들이 떠들어도 봐주시는 착한 선생님을 보며 친구들에게 짜증난 은서의 마음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이 했던 말, 들었던 이야기를 살려 써놓아서 교실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인이 글이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니깐…

  조회를 하기 전에 ‘책 안 읽는 사람’이라고 칠판에 적었다. 책을 읽기는 잘 읽는데 구완이와 찬기가 떠들어서 이름을 적어두었다. 내가 “안 떠들면 지워줄게.”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완이와 찬기가 자세를 바꾸어 올바른 자세로 책을 읽었다. 그래서 이름을 지워주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조용하고 떠들지도 않고 혼이 나지도 않았다. 1교시 때 김무경 선생님이 똑똑하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예쁘고 착한 선생님이니까 정훈이도 말도 잘 듣고 글씨도 예뻐지고 글도 또박또박 읽고 시키는 일도 잘 했다. 그렇지만 이정호 선생님이 없으시니까 조금 심심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편 우리 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서 정훈이가 조금 조용한 것 같다.

  점심 때 이정호 선생님이 오셨다. 정훈이와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생긋 웃었다. 정훈이도 좋아서 웃는 건지 실실 웃어댔다. “하하하, 이정호 샘이다.” 이런 식으로 웃었다.

  정훈이는 역시 이정호 선생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우리 반 선생님이 오시니까 정훈이처럼 웃음이 났다. (정수인)


  담임선생님이 없으면 봉사위원이 할 일이 많은데 마침 오늘은 수인이가 봉사위원이라서 아침에 했던 일을 잘 써놓았다. 글을 보니 아이들은 나 보다 수인이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내 잔소리에는 끄덕도 않더니 수인이 말에는 당장 ‘바른 자세’를 하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정훈이가 하루를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는데 수인이 글을 보니 모두 알 수 있었다. 정훈이가 착하고 예쁜 선생님 앞에서는 뭐든지 잘하는 걸 보니 기분은 나빴지만(?) 하루를 잘 지냈다니 다행스러웠다. 그럼 내년에는 정훈이를 착하고 예쁜 선생님 반으로 넣어야 하나?

  출장 때문에 빌 뻔 했던 하루를 네 아이들이 잘 채워주었다. 고마운 마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