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금요일 맑고 쌀쌀함
남학생들의 작은 갈등
구완이, 수민이, 동협이, 찬기, 성진이는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준비물이나 숙제는 잊어도 아침에 공차는 건 절대 잊지 않을 만큼 축구를 좋아한다. 힘센 옆 반 아이들과 4학년, 5학년 형들한테 밀려 골대를 차지하지 못해도 운동장 가에 줄지어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 나무를 골대 삼아 놀곤 한다.
아침마다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수업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적당히 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이 때 아니면 딱히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다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모른 체 하고 보고만 있다.
그런데 늘 사이좋게 노는 걸로 알고 있던 이 아이들 사이에 작은 갈등이 있었다. 오늘 아침 활동 시간에 쓴 글을 읽어보니 묘하게도 다섯 명 가운데 세 명이 같은 일을 두고 글을 썼다.
오늘 아침에 등교하는데 입구에서 옆 반 성민이를 만났다. 그런데 성민이가 “니 축구 안 하나?”라고 물었다. “응.”이라고 했더니 성민이가 “니 누가 안 시켜주데?”라고 말했다. 나는 “수민이랑 구완이가 안 시켜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성민이가 수민이한테 말을 해서 수민이가 축구를 시켜주었다. 성민이가 고마웠다. (박찬기)
찬기는 덩치도 크고 겉보기에 남한테 밀릴 것 같지 않은 아이다. 그런데 수민이와 구완이 말 한마디에 축구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공이 구완이 것인데다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수민이 한테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오늘 아침에 찬기는 서러움을 좀 당한 것 같았다. 힘센 옆 반 아이 도움으로 겨우 축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축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한테 공이 와서 차려고 했다. 그런데 구완이가 하지 말고 가라고 해서 수민이한테 물었다. “왜 저래?”라고 하니 수민이가 “니가 팀 공을 뺏어서 뺀데.” 라고 말했다.
난 교실에 들어와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근데 성진이가 와서는 “수민이가 빨리 온네.”라고 말했다. 난 가라고 했다. 기분이 안 좋았다. 구완이는 나를 뺐지만 구완이 공이니 강퇴(강제 퇴장)를 못한다.
찬기가 갔다. 태현이도 갔다. 시현이는 집에서 큰 거를 눈다고 늦었다. 나만 외톨이가 된 거 같다. 찬기가 빠졌을 때 이런 기분인 걸 알았다. 찬기한테 미안하고 내 마음은 슬프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 나쁘다. (김동협)
체육시간에 축구를 시켜보면 동협이는 개인기술이 좋아서 공을 요리조리 잘 몰고 다닌다. 동협이가 없으면 경기가 안 될 정도로 축구를 잘 하는데 그런 동협이 역시 찬기와 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오늘은 마음이 상해서 아예 교실에 올라와서 혼자 눈물을 삼켰다니 안 돼 보였다. 심지어 공을 잘 차지 않는 태현이까지 축구하러 갔으니 얼마나 슬펐을까. 시현이도 큰 거만 보지 않았으면 역시 축구를 했을 것이다. 수민이도 이런 상황을 글로 써 놓았다.
아침에 구완, 나, 성진이랑 축구를 했다. 동협이가 왔는데 구완이가 가라고 했다. 그래서 동협이가 갔다. 내가 “김동협”이라고 불렀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성진이를 보냈는데 “꺼지라!”고 했다. 그런데 성민이가 와서 찬기를 시켜주라고 했다. 우리는 찬기를 뺀 이유를 말했다. 그래도 찬기를 시켜주라고 했다. 그래서 구완이한테 맡겼다. 구완이가 시켜주라고 했다. 나는 빼고 싶다. (이수민)
아이들 글로 봐서는 우리 반에서 가장 센 아이는 구완이로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리 축구를 좋아하거나 잘 해도 공을 가진 구완이가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글을 다 읽고 어떤 일인지 더 알고 싶어서 축구 하는 아이들을 불렀다. 우선 오늘 있었던 일을 확인하고 열쇠를 쥐고 있는 수민이와 구완이한테 물었다.
“왜 동협이한테 가라고 했노?”
수민이가 대답했다.
“동협이는 같은 팀 공을 뺏어가요. 뺏어서 저 멀리 다른 골대까지 몰고 가서 싫어요.”
“그래? 동협아, 맞나?”
“예.”
“그럼 찬기는 왜 못하게 하노?”
이번엔 구완이가 대답했다.
“찬기는 공찰 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요.”
“몸으로 밀어붙인다는 말이야?”
“네.”
이 점은 동협이도 인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는 넣어주고 누구는 안 넣어주면 되나?”
“그냥 숫자가 모자라면 넣어주고 남으면 옆에 기다리라고 하는데요.”
수민이와 구완이 말로는 모든 게 다 까닭이 있었지만 옆으로 밀려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듯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음 주쯤 시간을 내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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