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3월 2일 - 새 학년 첫 날, 첫 만남

늙은어린왕자 2011. 3. 2. 22:46

3월 2일 수요일 꽃샘추위, 맑음.

새 학년 첫 날, 첫 만남

 

 

  새 학년 첫 만남이 있었다. 4학년 1반, 열 명의 남자아이와 열여섯 명의 여자아이가 한울타리 속에 들어왔다. 지난 해 우리 반이었던 아이가 아홉 명, 나머지 아이들도 합동체육이나 야외활동 할 때 얼굴을 맞댔던 아이들이다. 잘 아는 사람이 담임이 되어서일까? 아이들 얼굴에서 긴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업식이 끝나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지난해 반별로 특징이 뚜렷이 나타났다. 가장 젊은 여선생님이 담임이었던 1반 아이들은 싱글벙글 활기가 넘치고, 내가 담임했던 2반 아이들은 “다 알면서 왜 불러요?” 하는 투로 장난 끼 넘치는 목소리를 냈다. 엄한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3반 아이들은 얌전히 손을 들며 대답했다. 나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첫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을 가만히 살펴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선생님이 담임했던 2반은 모두 좋은 아이들이 왔고, 1반과 3반에서는 멋진 아이들만 온 것 같네요. 앞으로 일 년 동안 잘 지내봅시다.”

  말하는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도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말을 들었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게 서로의 마음을 다져주는 느낌이 든다. 우리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쁜 습관 버리기]

  셋째 시간에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이나 행동' 5~8가지를 쓰도록 한 뒤 종이를 공처럼 말아서 던지기 놀이를 했다. 던지기 전에 가장 버리고 싶은 것 한 가지씩 발표하게 했더니 내용이 다양했다. '엄마께 대들기', '인형 괴롭히기', '늦게 일어나기', '잔인한 게임 하기', '편식하기', ……. 이런 습관들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들 신나게 던졌다.

  칠판을 보고 던지라고 했는데 잘못 날아온 것 가운데 몇 개가 내 몸을 명중시켰다.

  "여러분이 버린 나쁜 습관에 내가 맞았으니 이제부터 내 습관이 되는 건가? 그럼 이제부터 내가 인형 괴롭히고 늦게 일어나고 잔인한 게임 해야겠네?"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물었더니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예!" 라고 대답하며 깔깔거렸다. 정말 이런 나쁜 습관들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훌쩍 날아갈 것 같았다.

 

 

 

 

 

 

 

[덧붙임]

  점심시간에 급식소에서 밥 먹고 있는데 정훈이가 투덜거리며 다가왔다.

  “선생님 왜 일 반 했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삼 반 안 가는 건데. 아이 참.”

  정훈이는 원래 일 반에 들어가 있었는데 친한 친구 민석이가 있는 삼 반으로 가겠다고 울며불며 애원해서 반을 바꾸었다. 

  “반을 추첨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정훈아.”

  “추첨할 때 삼 반 뽑았어야지요. 나쁜 샘!”

  “그래, 이왕이면 정훈이가 우리 반 되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민석이가 있잖니?”

  정훈이는 아쉬움을 채 달래지 못하고 내 엉덩이를 졸졸 따라오더니 결국 우리 교실까지 왔다. 한 동안 교실에서 놀다가 예전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며 몇 번이나 내 짐을 날라주고는 방과 후 수업한다며 갔다.

  다른 아이들보다 정훈이는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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