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5월 12일 - 숙제 다 했어요!

늙은어린왕자 2011. 5. 13. 18:43

5월 12일 목요일 구름 가득
숙제 다 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 일요일부터 그제까지 사흘 연휴를 맞아 ‘부모님이 하시는 일 한 가지 해보고 경험 써오기’ 라는 숙제를 냈다. 일요일이 어버이날이어서 부모님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라는 뜻에서 낸 숙제다.
  어제 글을 걷었을 때는 사실 열 명도 가져오지 않았다. 은근히 마음이 상해 있다가 하루 더 시간을 주었는데 놀랍게도 오늘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가져온 것이다. 비록 시간을 더 주긴 했지만 이렇게 모두 숙제를 해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예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이 곳 구봉에 와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글을 읽어보니 삐뚤삐뚤 들쭉날쭉 내용이 다양하다. 설거지나 청소, 빨래를 대신 해보았다는 내용이 많은데 일 했던 과정이 눈에 선하게 쓴 아이도 있고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정도로 생각만 써 놓은 글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경험을 글로 써 온 게 중요하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오늘 엄청 감동받았다.
  “얘들아, 고마워! 그리고 숙제 하느라 고생했어. 날 더울 때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보답할게.”

 

※ 일한 장면을 생생하게 쓴 글을 몇 편 소개합니다. 순위는 없고 책상 위에 놓인 순서대로 싣습니다. 

 

엄마와 고사리 뜯기
손미경

 

  고사리 뜯기를 했다. 그런데 고사리는 잎이 다 펼쳐진 것은 질겨서 못 먹고 고사리의 잎이 주먹이면 따면 된다. 일명 ‘주먹손’이다. 나는 그것을 뜯을 때 “주먹손”이라고 말을 하며 다녔다.
  주먹손 뜯기는 어떤 것은 연해서 잘 뜯기는 반면 어떤 것은 잘 뜯기지 않아서 손톱으로 눌러야지만 뜯길 듯 말 듯 했다. 자꾸 뜯다 보니 나만의 요령이 생겼다.
  고사리는 왠지 내가 주먹손이라고 별명을 지어주니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의미 있는 주먹손 따기였다.

 

빨래하기
장희지

 

  오늘 아침에 부모님이 하시던 양말 빨기를 해보았다. 빨아야 할 양말이 무척 밀려있었다.
  먼저 물을 틀고 양말들을 물에 담가두고 양말 한 개를 빨래판에 얹고 비누로 문질렀다. 비누로 다 문지르고 나서 뒷면에도 문질렀다. 다 문지르고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만졌다.
  아빠 양말은 너무 길어서 힘들었고 엄마 양말은 이상한 게 많아서 씻기가 힘들었다. 내 양말하고 동생 양말 씻기가 쉬웠다.
  실내화도 씻었다. 실내화는 빨래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실내화는 실내화 바닥만 씻고 안에는 안 씻었다. 왜냐하면 실내화 안에까지 씻으면 빨리 안 마르기 때문이다.
  물로 씻으니 오른쪽 실내화에는 물이 안 들어갔고 옆 부분에는 젖었다. 왼쪽 실내화는 물이 몇 방울만 들어갔고 옆 부분에는 젖었다.
  빨래하기와 실내화 씻기는 쉬운 줄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쉬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힘이 들었다.

 

설거지
김민경

 

  오늘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도와주었다. 설거지를 하던 중 민지 언니가 놀렸다. 난 그래서 울상을 지었더니 엄마가 오셔서
  “민경이 잘 하고 있어. 응, 그래. 민지는 민경이 설거지 안 도와줬잖니?”
하면서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든든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설거지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설거지가 끝나고 내가
  “엄마, 설거지 다 했어요. 휴우 힘들다.”
했더니 엄마는
  “수고했어.”
라면서 기분 좋게 해주셨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 기분이 좋을 줄 여태까지 몰랐다. 나는 설거지를 시간 나면 도와드릴 거라고 다짐하였다.

 

나물 다듬기
박시현

 

  할머니 제사 때문에 구미에 있는 외삼촌 집에 갔다. 12시쯤에 도착해서 외삼촌을 만나 외삼촌 집으로 갔다. 가서 조금 쉬면서 TV 보고 동생과 놀아주었다. 엄마가
  “같이 나물 다듬을래?”
하고 물었다. 밥 먹을 때 반찬으로 쓰일 시금치를 다듬는 것이었다. 심심하고 숙제거리로 좋을 것 같아서 시금치를 다듬었다.
  시금치는 여러 개가 한 덩어리로 되어있었다. 시금치를 하나하나 떼어내다가 너무 작아지면 엄마가 칼로 밑 부분을 자르고 작은 부분을 비닐에 넣었다. 배춧잎 떼는 것 같았다. 다 끝내고 엄마가
  “숙주 나물도 할래?”
하고 물었다. 난 고개를 흔들며
  “아니, 좀 많이 했잖아. 게임 하면 안 돼?”
라고 했더니
  “그래, 닌텐도 좀 해라.”
고 해서 작은 방으로 가서 동생과 닌텐도를 했다.

 

설거지 하기
안유진

 

  숙제 때문에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해보았다. 처음에 스폰지에 물을 조금 묻혔다가 짜고 퐁퐁을 뿌린 뒤 거품을 내서 접시를 닦았다.
  닦을 때 투명한 유리로 만든 그릇은 너무 무거워서 잘못하면 떨어뜨릴 뻔 했다. 왜냐하면 퐁퐁을 해서 조금 미끄럽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엄마, 그릇이 너무 무거워.”
라고 했더니 엄마가
  “유리로 만들어서 그래. 떨어뜨리면 깨져.”
라고 하셨다.
  다 거품으로 닦고 물로 헹구는데 내가 깜빡하고 물로 헹군 그릇을 물이 담겨있는 통에 담갔다. 알아차리고 씻던 그릇을 선반 위로 옮겨 놓았다. 열심히 분류해서 넣으니까 그릇 넣는 오른쪽 선반에 그릇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으로 수저를 수저통에 넣는데 그것도 분류해서 넣으니까 가운데에 제일 많았다. 

  나는 엄마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다음부턴 내가 조금씩 도와주어야 겠다.

 

빨래 개기
강민서

 

  학교 숙제로 빨래를 개고 서랍장에 넣었다. 하는 것을 볼 때는 쉽게 보였지만 해보니까 힘들었다.
  빨래 개기는 빨래 걷어서 개기, 종류별로 정리하기, 서랍장에 넣기, 빨랫대 정리하고 서랍장 정리하기 순서로 했다.
  아빠가 개는 건 조금 도와주었다. 하지만 힘들었다. 나는 난생 처음
  ‘아, 엄마가 이 고생을 매일같이 겪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고통을 느끼고 글로 쓰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지고 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난 다짐을 했다. 무엇이든 엄마나 아빠가 하는 것은 도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설거지도 하고 심부름도 계속 할 것이다.

 

설거지하기
김현민

 

  오늘은 학교 숙제로 엄마하고 설거지를 하였다. 그런데 난 힘들기도 하였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제일 먼저 그릇을 거품에 닦는다. 두 번째로 거품 묻은 그릇을 그냥 투명한 물에 헹군다. 세 번째로 헹군 그릇을 닦고 가지런히 쌓아놓는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니 재미있었고 엄마한테 배우면서 하니까 더욱 재미있었다.
  한 십 분~이십 분 후 모든 그릇을 깨끗하게 했다. 그것을 보니 그릇도 마음도 깨끗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