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2월 16일 - 자기 꾀에 넘어간 지상이

늙은어린왕자 2011. 12. 30. 14:28

12월 16일 금요일 바람이 세차게 붐
자기 꾀에 넘어간 지상이

 

 

  그저께 점심시간이었다. 지상이가 내일(어제) 내외동으로 이사 간다기에 학교도 옮길 거냐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며칠 동안 그 문제로 고민했다고 했다. 엄마는 가까운 학교로 이사하는 게 낫다고 하는데 자신은 좋은 친구들이 있는 우리 학교에 계속 다닐 거라고 했다. 그 날 <겪은 일 쓰기> 공책에도 이렇게 써 놓았다. 


  나는 내일 이사를 간다. 그걸 대비해서 물건을 상자에 넣어 간편하게 한다. 그리고 올 사람이 편하게 청소도 해주어야 한다. 
  내외동에서 학교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엄마는 그냥 전학 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나는 전학을 가고 싶지 않다. 왜냐면 축구광 수민이, 말 많은 시현이와 성윤이, 장난꾸러기 현수 이런 친구들을 다른 학교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학을 안 가기로 했다. 좀 멀더라도 자전거 타고라도 오기로 했다. 내일까지 이 말을 안 하고 친구들을 좀 놀려주고 싶다. (12월 14일, 박지상)

 

  지상이는 친구들이 모두 자기가 전학 간다고 알고 있다며 안 가는 것을 숨기고 있다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놀라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모른 척 하고 있으라고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사하는 날인 어제 지상이는 아이들로부터 작별 인사를 많이 받았다.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작별인사를 받아주는 모습을 보니 지상이가 연기를 꽤 잘하는구나 싶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오늘 아침이었다. 지상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서자 남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상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친구들이 반겨줄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들 입에서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야, 간다더니 왜 왔노?”
  “가라. 다른 학교로.”
  “빨리 가라.”
  아이들은 지상이의 어깨를 툭툭 치거나 밀치며 한 마디씩 했다.
  “와! 지상이다.”
  “간다더니 다시 왔네. 환영한다.”
  “야호!”
  이런 말을 기대했던 지상이는 친구들의 냉정한 말을 듣고 금세 시무룩해졌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내가 모른 척 하며 물었다.
  “지상아, 와 그라노?”
  지상이는 속으로 섭섭한 마음을 누르고 대답했다.
  “이럴 수가 있어요? 너무해요.”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뭘 그것가지고 그러냐는 듯 웃으면서 지상이 등을 툭툭 쳤다. 녀석들은 지상이가 다시 와서 반가운 마음을 일부러 거꾸로 표현한 것이었다.
  지상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멍 하니 앉아있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더니 지상이가 꼭 그런 모습이었다.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지상이를 위해 친구들의 말을 번역하면 이렇다.
  “야, 간다더니 왜 왔노?” → “간다더니 다시 왔네? 진짜 반가워.”
  “가라. 다른 학교로.” → “다른 학교로 가면 안 돼.”
  “빨리 가라.” → “절대 가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