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4 교실일기

7월 2일 - 천둥번개와 아이들

늙은어린왕자 2014. 9. 23. 18:08

천둥번개와 아이들

 

 

그저께인 월요일, 후텁지근하던 오후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실내에 있다 보니 번개가 내리치는 건 못 봤는데 천둥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하늘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가슴은 쇠방망이로 맞은 듯 멍해졌지요.

아이들도 적잖이 놀란 모양입니다. 교실에 있을 때 그랬다면 재잘대는 소리에 묻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방과후에 일어난 일이라 생생하게 보고 들은 아이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튿날 글쓰기 시간에 아홉 명이나 천둥번개 이야기를 썼습니다.

<천둥번개> 권도은
어제 태권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우르르쾅쾅 소리가 났다. 나는 대포 소린지 알았다. 사모님(사부님?)은 번개라고 하셨다. 번개 소리가 대포 소리로 들린 것이었다.

<천둥> 박서진
어제 낮에 갑자기 콰쾅 소리가 났다. 왜냐하면 천둥이 쳤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날씨는 화창했다. 다음에는 천둥이 안 쳤으면 좋겠다.

아직은 천둥소리가 낯선 아이들에게 하늘을 찢는 듯한 괴음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도은이는 어디서 대포 소리를 들었는지 천둥 소리를 대포에 잘 비유했습니다. 서진이도 '콰쾅'이라며 들은 대로 실감나게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요란한 천둥 번개가 쳤는데도 비가 별로 안 온 건 저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서진이는 그걸 잡았습니다.

알다시피 번개와 천둥은 공기와 공기가 부딪힐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공기끼리 부딪힐 때 불꽃이 튀며 소리가 나는데 이 때 튕긴 불꽃이 번개이고 소리는 천둥입니다. 마치 망치 두 개를 서로 칠 때 불꽃이 튀고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요.

두 현상은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번개는 속도가 빠른 빛이어서 일어나는 순간 우리 눈에 보이는 반면 천둥소리는 속도가 늦어서 천천히 우리 귀에 들립니다. 속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번개천둥'이 되어야 하는데 흔히 우리가 '천둥번개'라고 하는 건 소리가 주는 공포감이 더 커서 그런 건 아닐까요?

이런 건 고학년이 되면 배우는 내용이라서 우리 꼬물이들이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요? 무리해서 이해시킬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도은이 글에서 천둥을 번개라고 오해한 것도 그렇고, 다음 글에서 민채가 '번개가 우르릉쾅쾅 하며 쳤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채와 지수가 주고받는 말에서 기특하게도 번개를 '전기'로 말한 것은 나름 지식이 뒷받침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서운 천둥번개> 강민채
어제 오후 세 시 쯤에 영어를 마치고 지수와 함께 횡단보도를 지나고 길을 건너는데 내 손가락 세 개를 벌린 것 바로 앞에서 번개가 우르릉쾅쾅 하며 쳤다.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가 쳤다. 바로 앞에서 번개가 치니 소리도 무척 컸다. 그리고 나와 지수는 호들갑을 떨며 무서워 너무 무서워 같은 말을 했다. 집에 와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지수와 나는 번개치는 날만 되면 그 생각이 날 것이다. 아, 계속 계속 생각해도 너무 무서워.

<천둥번개> 민지수
어제 나는 민채랑 영어학원 마치고 공부방에 갔다. 나는 민채한테 물었다. 민채야 오늘 비올꺼 같다. 민채가 답했다. 응, 비올꺼 같애. 내가 말했다. 응 그럴꺼 같다. 근데 하늘에서 불이 번쩍 했다. 내가 물었다. 저거 뭐지? 민채가 답했다. 저건 전기야. 한 발을 가는 순간 우르르쾅쾅 소리가 났다. 민채가 말했다. 지수야, 천둥번개야. 빨리 머리 숙여! 내가 답했다. 알겠어. 빨리 공부방에 가야되겠다. 민채가 말했다. 그래! 나는 정말 무서웠다.

실내에 있어도 무서운 생각이 드는데 바깥에서 천둥번개를 만나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민채가 지수에게 "천둥번개야. 빨리 머리 숙여!" 하는 모습에서 급박한 모습이 보입니다. 정민이 이야기를 보니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게다가 우렁찬 빛과 소리답지 않게 비가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소나기 오는 날> 조정민
어제 3시 40분에 피아노 학원을 갈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고 천둥이 쳐서 무서웠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우산을 들고 왔다. 갑자기 번개가 쾅 하고 소리가 나서 나는 어떻게 할 지 몰랐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멈춰서 우산을 접고 안심하고 신나게 가고 있었다. 또 소나기가 와서 우산을 펴고 갔다. 그런데 아까보다 더 큰 번개 소리가 나서 나는 깜짝 놀라고 무서웠다. 또 소나기가 멈추고 피아노 차가 왔다. 나는 피아노 차를 타고 갔다.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또 소나기가 왔다. 소나기가 변덕쟁이 같다.

이 날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쾅 하고 천둥 소리가 들릴 때 그 천둥소리만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거든요. 그 시간까지 남아있던 고학년들, 방과후 수업 받던 아이들이 메아리의 주인공이었을 텐데, 지혜와 예진이 이야기를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희은이는 비가 걱정이었는데 비가 적게 와서 다행입니다.

<천둥 번개> 백지혜
어제 천둥번개가 쳤다. 엄청 큰 소리로 쳤다. 너무 무서웠다. 방과후를 하다가도 천둥이 쳐서 앞 반에 무서워서 5학년 언니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끄러워서 제대로 주산을 못 했다. 다음에는 안 쳤으면 좋겠다.

<천둥소리> 주예진
어제 창의과학에서 뭘 만들고 있는데 천둥이 쳤다. 그래서 창의과학에서 소리를 질렀다. 너무 무서웠다.

<천둥번개> 송희은
나는 어제 영어를 마치고 학교에 갔다. 왜냐하면 방과후 주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이 쳐서 무서웠다. 나는 그 때 비가 오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고 나오니까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나는 비오는 게 제일 싫은데 비가 와서 나는 비가 한 번이라도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연이는 집에서 번개와 천둥을 보고들으며 무서웠을텐데 오빠와 할머니가 함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할머니 경험담 때문에 앞으로는 천둥번개 칠 때 휴대폰은 덜 쓸 것 같습니니다.

<천둥번개> 김나연
어제 오후 나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번개가 쳐서 무서웠다. 그 때 오빠야가 와서 덜 무서웠지만 연속으로 번개가 다섯 번 쳤다. 그리고 할머니가 들어오셔서 수산에서 번개칠 때 휴대폰을 써서 번개에서 나오는 전기에 죽은 사람도 있다고 말하셔서 무서웠다.

저는 아이들이 교실에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함께 있을 때 그랬다면 번개와 천둥이 왜 일어나는 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무엇보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신이야기'도 한 토막 했겠지요. 방학 전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 보고 귀신이야기 한 토막 잘 손질해놓아야겠습니다.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