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농담> 민음사판
지금까지 해보기 모임에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 <농담>만큼 제 마음을 파고드는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 오늘 지난번에 남겨두었던 부분을 다 읽고 또 처음부터 정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루드빅이 루치에를 만난 장면까지 나갔고요. '밀란 쿤데라'는 서양인이지만 동양인의 뇌구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다루는 작가들의 감성을 두고 동서양을 구분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사색의 깊이가 깊고 끈적끈적하게 사물이나 사람에 관해 생각하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감성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루드빅은 농담으로 뒤틀린 자신의 삶을 구원하려고 복수의 칼을 갈았으나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마음을 접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울 전리품(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얻기도 했습니다만 전체로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루드빅이 스스로를 가두었던 증오와 복수심을 '인식의 감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는 사건 이후 한 시도 그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인식의 감옥'은 비단 루드빅에게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감옥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고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사람을 유혹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에게도 수많은 감옥이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소위 승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에 기준을 두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목표를 위한 화신으로 간주하고 그들과 한 발 떨어진 삶을 가치롭다고 생각하거나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나만의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면 저 역시 루드빅과 똑 같은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도 예전에 전통사회에서 겪었던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요즘 사회를 증오하고 피하려 한다면 역시 그 감옥은 내 속에서 부활하는 것이겠지요.
제 삶을 돌이켜 보니 그런 감옥들을 얼마나 많이 들락거렸던가 싶습니다. 옥살이를 하는 지 하지 않는 지 스스로도 모른 채 한 동안 옥살이도 했을 것이고 또 다행스럽게도 그 곳에서 벗어난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감옥에 밀어넣어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농담>을 읽으며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 앞으로도 감옥에 들락날락할 일이 많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내면과 소통하고 또 밖으로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져나간다면 옥살이를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줄겠지요.
<농담>이라는 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면서 비로소 책읽는 맛을 느낍니다. 입맛을 찾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원래 사색을 좋아하는데 많은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책읽기도 일을 쳐내는 방식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내면과 소통하는 책읽기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일을 적게 만들어야 할텐데 잘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201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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