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4 교실일기

3월 31일 - 활기찬 월요일 아침

늙은어린왕자 2014. 9. 23. 17:48

활기찬 월요일 아침

 


  2학년은 참 활기차다. 숨 쉬듯이 입을 쫑알거리고, 쉴 새 없이 고자질을 하며, 틈만 나면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바로 2학년이다. 세상 일 적당히 경험했다며 무뚝뚝하게 인상 짓고 있는 고학년들과도 다르고, 같은 저학년이지만 아직 멋모르고 앉아 선생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만 기다리는 1학년들과도 또 다르다. 특히 학교에 오자마자 날숨처럼 사연을 쏟아놓는 아침이면 이런 '증세'가 더욱 도드라진다. 

  주말을 지나면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3층 들머리에 올라서니 '개구쟁이' 재웅이가 반갑게 맞이한다.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는가 싶더니 쪼르르 따라오며 묻지도 않은 말을 쫑알거린다.
  "태권도 공인 심사 봤어요."
  교실에서 딱지치기에 빠져 있을 녀석이 여기까지 나온 걸 보면 이 말을 어지간히 하고 싶었던가보다. 심사가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녀석은 물어주기를 바랐다는 듯이 바로 대답한다.
  "이제 빨간 띠 품띠 돼요. 통과했어요."
  태권도를 배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봐서 이제 한 단계 올라갔다는 말이겠지? 잘 했다고 칭찬했더니 아주 싱글벙글한 얼굴로 들어간다.

  지난주부터 사촌 동생을 보고 싶다던 진우는 한숨을 푹푹 쉬며 다가온다.
  “주말에 친동생 못 봤어요.”
  그저께부터 동생 보고 싶다며 주말을 기다리더니 무척 실망한 표정이다. 진우는 사촌 동생이 얼마나 좋은지 말할 때마다 ‘친동생’이라고 부른다.
  진우 말로는 할머니 집에 갔는데 동생이 부산에 선물 사러 가는 바람에 못 만났다고 한다.
  “동생 만나면 꽉 안아주고 싶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나한테까지 와서 이럴까. 진우는 두 팔로 동생을 안는 시늉을 하더니 들어간다. 

  컴퓨터를 켜고 화면을 보고 있으니 성웅이가 할 말이 있는지 내 책상 주위를 서성거리더니 다가온다. 성웅이는 지난 금요일에 귀 문제로 수술하느라 학교에 못 왔다.
  "저요, 아드노이드 수술 했어요.“
  앞니가 몇 개나 빠져 시원찮은 발음으로 말하는데, ‘아드노이드’가 뭔지는 모르지만 수술 잘 됐냐고 물어보니 잘 됐다고 한다.
  옆에 있던 민채가 시험한다고 성웅이 귀에 대고 "아", "아" 소리를 내니까 원래 소리는 잘 들었단다.
  성웅이는 수술을 다섯 번이나 했다며 스스로 대견한 표정을 짓는다. 힘들었겠다고 하니까 마취는 안 했고 자고 일어나니까 수술이 끝났더란다. 민채는 그게 마취라고 한 소리 한다. 성웅이는 수면마취를 그냥 잠으로 알았나보다.
  어쨌거나 성웅이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민채한테 지난 금요일 날 왜 엄마 안 오셨냐고 물으니 민채는 엄마에 관한 정보를 풀어놓는다.
  “요즘 엄마요, 대학원 공부도 하고 학교에서 전자과학도 맡아서 바빠요.”
  듣고 보니 민채 엄마는 참 능력자다. 아이들 키우랴, 대학원 다니랴 그리고 과학경진대회를 대비해서 전자과학도 맡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우리 엄마요, 한국사 2급도 땄어요."
  민채는 오늘 기분이 좋은지 엄마 자랑에, 예쁜 원피스 자랑까지 하고 들어간다.

  요즘 몇몇 아이들 가방에는 책이나 학용품 대신 딱지가 가득하다. 준민이도 들고 다니는 손가방 절반이 딱지다. 아니나 다를까 준민이는 가방에 들어 있던 딱지를 책상 위에 늘어놓는다.
  "이거 보세요. 본희 꺼 왕 딱지 빼고 다 땄어요."
  대략 살펴봐도 40장은 되어 보인다.
  "우와 엄청나네. 그거 다 사려면 만오천 원은 하겠다."
  준민이가 어깨를 으쓱하자 멀찌감치 듣고 있던 본희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나는 한 가방 있다. 그라고 내가 언제 다 잃었노?"
  본희는 갖고 있던 왕 딱지를 들어 보인다. 자존심 건드리지 마라는 표시다. 
  "여기서 했을 때 다 잃었잖아!"
  "다 안 잃었다."
  준민이나 본희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렇게 아침은 언제나 번잡하지만 활기차다. 아이들 모습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으로 남기지 못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저나 지난 금요일에 내 준 숙제 ‘주말에 있었던 일 가운데 선생님한테 들려줄 이야기 한 가지 마음속에 정해오기’는 어떻게 됐을까? 위에서 적은 것처럼 이미 말로 한 아이들도 있지만 모두 들을 수 없어서 할 말을 글로 써보도록 했다. 몇 개만 골라보았다.

 

  토요일에 지구촌 전등 끄기를 했어요. 무서웠는데 엄마가 꺼라고 했어요. tv도 끄냐고 물었는데 끄라고 했어요. 그런데 컴퓨터를 해라고 했어요. 9시 반까지 해서 9시 반이 돼서 킬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불 키는 것을 깜빡 했나 봐요. (조아정)

 

  어제 밤에 엄마 몸이 안 좋았다. 어지럽다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와 응급실에 갔다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니와 동생이랑 나랑 셋이 있고 엄마랑 아빠는 병원에 갔다. 나는 엄마가 아프니까 슬프다. 그래도 많이는 안 아프다. 그래서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은 몸이 안 좋다. 링거 한 대 맞고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다. 난 기분이 슬펐다. 하지만 내가 엄마를 도와드려야 된다. (민지영)

 

  어제 시골 큰엄마 집에 갔다. 9남매 중 2형제가 왔다. 하루 자고 점심 먹고 2시에 아빠가 일하러 간 데에 쑥을 캐러 갔다. 칼로 쑥을 캤다. 민석이 오빠야가 우리 엄마가 캔 걸 뺏어갔다. 엄마가 오빠야한테 발차기를 했다. 오빠는 도로에 누워있었다.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김가영)

 

  어제 집에 있는 인라인, 자전거를 타러 갔다. 동생은 자전거, 형아와 나는 인라인을 탔다. 엄마와 아빠는 쑥을 캤다. 천 킬로그램(?)까지 경주를 하자고 했다. 출발할 땐 실수를 했지만 도착선에 발을 내밀어서 내가 이겼다. (박준현)

 

  일요일 날에 서어지 공원에 엑스보드를 타러 갔다. 그 때 보드신을 만났다. 그 사람은 묘기를 아주 잘 부린다. 나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알고 보니 미국인이었다. 그 때 나도 새로운 걸 탔다. 엄마가 와서 집에 갔다. (박준하)

 

  낮에 형 친구와 함께 축구를 하였다. 나는 써브(?)를 날려서 우리 팀이 1점을 얻었다. 계속 축구를 하다 보니 상대편과 2점 차이가 났다. 7대 5로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겨서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박영은)

 

  일요일에 내 친구 현우와 현우 형인 현호형과 이모, 이모부, 동생, 엄마, 아빠와 같이 벚꽃구경을 하러 갔다. 딸기도 샀다. 근데 무슨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사람이 말을 타고 있었다. 그것도 3마리나. 1마리에 한 명씩. 근데 공원에 도착하자 말이 공원에 들어왔다. 흰색 말 1마리, 갈색 말 2마리가 있었다. 사람도 말을 타고 들어왔다. 근데 그 말 3마리를 각자 한 마리씩 나무에 묶기 시작했다. 근데 흰색 말이 갑자기 발로 땅을 팠다. 그래서 이모, 이모부, 엄마, 아빠가 말 뒤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엄마 휴대폰으로 말을 찍었다. 흰색 말과 갈색 말 다 찍었다. 그래서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이 말 어떻게 탔어요?” 그러니 아저씨가 “너도 크면 탈 수 있어.”라고 그랬다. 정말 고마웠다. 실컷 놀고 식당에서 같이 밥 먹고 친구 집에서 놀고 집에 갔다. (구본희) (2014.3.31)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임.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단나누기는 생략함.